|
▲ 프란치스코 교황과 프랑스 주교들이 프랑스 가톨릭 성학대 독립조사위원회(CIASE) 조사보고서가 발표된 이튿날인 지난해 10월 6일 성학대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
프랑스 가톨릭교회가 주교 11명이 성학대 추문에 연루된 사실이 공개되면서 또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프랑스 주교회의 의장 에릭 드 물랭 보포르 대주교는 7일 추계 정기총회 관련 기자회견에서 “성학대 및 관련 범죄 은폐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거나 교회 징계 절차를 밟게 될 전현직 주교는 모두 11명”이라며 “이 가운데 전직 주교 6명은 이미 기소됐다”고 밝혔다.
보포르 대주교는 이에 더해 과거의 성학대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 피에르 리카르 추기경의 성명을 대독했다. 전 보르도대교구장 리카르 추기경은 성명에서 “35년 전 신부 시절에 14살 소녀에게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했다”며 “내 행동이 그 사람에게 심각하면서도 평생 치유되지 않을 결과를 초래했기에 거듭 용서를 청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 법의 심판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보포르 대주교는 “혐의를 받는 주교들 가운데 일부는 사법 당국이나 교회 법원, 또는 양쪽 모두로부터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 소식을 접한 프랑스 교회 안팎에서는 다시 한 번 실망과 분노가 쏟아졌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증언과재활협회의 올리비에르 사비낙은 AFP 통신 인터뷰에서 “아찔한 주교 숫자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교회는 매번 (제보와 경종을 무시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나서야 반응한다”고 질타했다. 이어 “너무나 많은 것이 은폐돼 있다”며 “앞으로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10월 1950년부터 2020년 사이 ‘최소 21만 명의 성학대 희생자가 발생하고, 약 3000명의 성직자와 수도자가 범죄에 연루된’ 사실을 밝혀낸 프랑스 가톨릭 성학대 독립조사위원회(CIASE) 조사보고서에 한 차례 충격을 받은 바 있다. 독립조사위원회는 조사 결과와 관련해 “가해 성직자가 기소되는 것을 막아온 교구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해 말에는 파리대교구장 미셸 오프티 대주교가 교구 운영방식과 사생활 논란에 휩싸여 사임했다. 크레테유교구장 미셸 상티에 주교도 지난해 6월 성범죄와 관련된 불미스런 이유로 교구장직에서 물러났다.
주교회의는 지난해 독립조사위원회 조사보고서가 나온 이후 정화와 쇄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교회의 의장이 혐의를 받는 주교 숫자를 먼저 공개한 것도 정화를 위한 자기 고발 차원으로 풀이된다. 과거 70년간의 잘못과 상처를 들춰내는 독립조사위원회 조사 역시 주교회의와 남녀수도회장상연합회가 의뢰한 것이다. 이 조사는 2년 반에 걸쳐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이 보고서와 관련해 주교회의 의장단은 지난해 말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했다. 의장단에 따르면 이 만남에서 교황은 “주교도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름다운 영혼이어야 한다고만 부르짖는 모순”을 지적한 뒤 악의 뿌리를 뽑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교황은 보고서가 발표된 이튿날인 지난해 10월 6일 수요 일반알현에서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한 뒤 “하느님께는 영광, 우리에게는 수치가 있게 하소서. 지금은 부끄러워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탄식했다. 이날 교황과 함께 기도한 프랑스의 고빌리야르 주교는 “두 번 다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하고,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고, 모든 일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