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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1월 4일 바레인에서 동방 정교회를 대표하는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를 만나 그의 목걸이용 성상에 입을 맞추고 있다. CNS 자료사진 |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가 각기 달리 지내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통일하는 문제를 놓고 물밑에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동방 정교회를 대표하는 콘스탄티노플의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는 최근 튀르키예 언론 인터뷰에서 “양측 대표가 부활절 날짜를 통일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곧 합의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주님 부활 대축일 통일은 2025년 희년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며 두 교회가 2025년을 목표로 정해놓고 논의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2025년은 가톨릭의 희년인 동시에 주님 부활 날짜를 처음 정한 니케아공의회(325년) 1700주년이 되는 해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16세기 전까지만 해도 같은 날 주님 부활을 기념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대로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이 뜬 후에 돌아오는 첫 주일이었다. 하지만 1582년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이 그동안 사용해온 율리우스력을 버리고 새로운 역법 체계(그레고리오력)를 도입함에 따라 동ㆍ서방 교회의 부활절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율리우스력은 달의 삭망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레고리오력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만들었다. 그레고리오력을 도입한 1582년만 해도 두 역법 체계는 10일이나 차이를 보였다. 이 때문에 당시 유럽은 1582년 10월 4일 다음 날을 14일로 정해야 했다.
동방 정교회는 지금도 율리우스력에 따라 부활절을 계산한다. 현재 율리우스력은 그레고리오역보다 13일 늦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몇 년 전 한 사제 모임에서 형제가 서로 다른 날에 주님 부활을 기념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해학적으로 풍자한 바 있다.
“가톨릭 신자와 정교회 신자가 길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한 사람이 ‘너희 예수님은 일어나셨냐?(부활하셨냐?)’라고 묻자 상대방이 ‘우리 예수님은 다음 주 일요일에 일어나실 거다. 너희 예수님은?’ 하고 되물었답니다.”
부활절 통일은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부터 논의된 문제다. 공의회 교부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같은 날 부활 축제를 지내도록 바람직한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합의를 이룰 때까지 잠정적으로 같은 지역이나 국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총대주교나 그 지역 교회의 최고 권위는 관계자들과 만장일치로 합의하여 주님 부활 대축일을 같은 주일에 경축”할 것을 권고했다. (「동방 가톨릭 교회들에 관한 교령」 20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동안 여러 차례 동방 교회 지도자들에게 부활절을 통일하자고 제안했다.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도 이번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통일할 때가 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교회와 이집트 콥트 교회 등 여러 동방 교회도 찬성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기대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정교회에서 신자 수가 가장 많은 러시아 정교회가 합의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정교회는 현재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와 갈등을 겪고 있다.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가 2019년 러시아 정교회에 속해있던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을 승인하자 관계를 아예 끊다시피 한 상황이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