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아니면 적어도 교회의 소식을 보도하거나 비평하는 기자들의 책임이 크다. 우리는 모두 주교들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주교들은 항상 우리의 관심사이고 무엇을 쓰거나 말할 때 주요한 부분이다.
왜 아니겠는가. 주교들은 “하느님의 제정으로 사도들의 지위를 계승한다.” 주교들은 “교리의 스승들이요, 거룩한 예배의 사제들이며, 통치의 교역자들이 되도록 교회 안에 목자들로 세워진다.”(교회법 375조) 또 주교들은 가톨릭교회의 “대사제로 하느님의 신비들의 주 분배자들이다.”(835조) 그렇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힘 있고 중요한 분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교들은 교회 안에서 거의 모든 권한을 지니고 있다. 종종 다른 이에게 권한을 위임하기도 하지만, 교회법에는 주교들이 이를 꼭 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사실 주교들의 동의 없이 전례의 큰 변화나 주요한 인사이동은 불가능하다. 분명 주교들은 지역교회 신앙 공동체에서 생기는 중요한 문제에서 최종 권한을 갖고 있다.
우리는 또 ‘주교단의 으뜸’인 로마의 주교에 대해서도 집착하고 있다. 교황이라고 불리는 이 주교는 교회법적으로 이 세상 보편교회의 목자이다. 교황은 “교회에서 최고의 완전하고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직권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331항) 사실 “교황의 판결이나 교령에 불복하는 상소나 소원은 용인되지 아니한다.”(333조 3항) 교황은 절대왕정 국가나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권력 구조의 정점에 있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로마의 주교가 최고의 주교는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초기에 많은 교황들이 다른 지역 주교들에 대한 사법적 권한을 점차 확대했고, 제왕적 교황직이 완성됐다. 과거 지역교회 공동체에서는 하느님의 백성과 성직자가 주교들을 뽑았지만, 지금은 “교황이 주교들을 임의로 임명하거나 합법적으로 선출된 자들을 추인한다.”(377조 1항)
이쯤 되면 교회법에서는 교황과 교황의 권한을 ‘최고’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교황과 교황의 동료 주교들은 교회 안에서 대단한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많은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돋보이는 경우가 없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주교들이 법적으로 상의하달식, 준 왕정국가의 구조 안에서 민주적인 사회의 교구 신자들을 ‘사목’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분명 주교 자신들도 신자들도 불편해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주교들은 독재자처럼 행동하길 원치 않겠지만, 이들은 책임이 따르는 환경 안에서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며 일을 한다.
자신의 권한을 너그럽게 다른 이에게 위임하는 주교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주교들이 이렇게 일을 하는가? 무슨 일이 생기든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상황이기에 많은 주교들이 자신의 권한을 나누는 것을 조심스럽게 여긴다. 고귀한 의무감이든 통제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든 이러한 주교에 대한 권한 집중은 재난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사소한 교회법이나 교리 위반에도 계속해서 ‘교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열정으로 교구민이나 사제들의 사기를 꺾는 일도 있다. 대부분의 사제들이 주교들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는 최근 미국의 ‘가톨릭 프로젝트’ 설문조사 결과는 이를 방증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면 미국 주교단, 적어도 미국 주교회의가 전 세계 가톨릭 교계를 정확하게 대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미국 주교회의는 새로운 의장단을 뽑았는데, 이들은 교황이 제시한 사목적 원칙, 즉 모든 사회와의 대화나 소외된 이웃 동반에 반대하거나 이에 미온적이다. 이것은 교회의 모든 단계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실행하려는 교황의 노력에 반하는 일이다.
대체로 미국 주교단은 세례받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과의 광범위한 협의에 대한 관심이 적다. 다른 지역의 주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이는 시노드 과정의 주요한 부분이다.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교구 단계의 경청 모임에 대한 미국 주교단의 반응은 미국 신자들의 기대처럼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이 시노드 과정은 이제 겨우 시작했다. 이제 초기 단계이며 여전히 상반된 감정과 회의론, 적대감이 무성하다. 하지만 만일 이 과정이 교회 안에서 뿌리내리게 된다면 교계는 하느님 백성과 대화, 심지어는 논쟁을 하게 될 것이다. 변화와 개혁이라는 당면 과제를 단순히 무시하거나 쉽게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분명, 시노달리타스라는 개념은 상의하달식, 왕정국가와 같은 몇몇 성직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 안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했던 것처럼 시노달리타스가 교회의 구성요소가 된다면 교회의 현 구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만일 주교 임명에 관해 신자들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는다면, 시노달리타스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나 웃음거리로 끝날 것이다. 여기에는 로마의 주교, 바로 교황 선출 방법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