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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노란봉투법

조승현 신부(CPBC 보도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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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세밑이다. 어느 해가 그렇지 않으랴만 올해도 다사다난했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난 것 같았던 대통령 선거,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던 10월 29일의 이태원, 꺾이지 않는 마음을 보여주었던 카타르 월드컵 등 모두 순간이 슬픔과 환희의 교차였다. 숨 가쁘게 달려온 2022년이지만 해를 넘기지 않고 해결하고 새해를 맞이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노란봉투법이다.

2014년 쌍용자동차에서 파업이 있었다. 회사와 경찰은 파업이 불법이었다며 파업을 주도한 노동자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그러자 한 시민이 손해배상액에 도움이 되라며 노란봉투에 돈을 넣어 언론사에 보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노란봉투에 모금액을 모으는 전국적인 기부금 모금 운동이 일어난다. 그렇게 노란봉투는 파업 노동자와 함께하는 연대와 노동권을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된다.

파업 후 손해배상은 불법 파업에 과해진다. 문제는 불법의 범위가 너무나 넓다는 것이다. 그동안 하청 노동자가 아무리 교섭을 하고 싶어도 ‘진짜 사장’인 원청은 모른 체한다. 할 수 없이 하청 노동자가 쟁의라도 하려고 하면 하청의 ‘가짜 사장’은 ‘불법 딱지’를 붙여 막대한 손해배상을 부과한다. 민법을 활용하여 사실상 노조 활동을 막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헌법이 보장한 파업에 민사 책임을 묻는 유일한 OECD 국가이다.

그렇게 손해배상 폭탄을 맞은 노동자들은 사회적 불구자가 된다. 신용불량자가 되어 스마트폰 개설도 은행 계좌도 쉽게 만들지 못하다 월급은 가압류로 반토막이 된다. 회사를 퇴직해도 배상책임은 그대로여서 가족해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파업을 하기 위해선 인생을 걸어야 한다. 그동안 헌법이 보장해놓은 노동자의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실질적으로 막혀있었던 것이다.

손배배상 폭탄의 무서움은 올해에도 있었다. 한 달 꼬박 일해도 최저 시급 230만 원 받으며 일하던 이들이 있었다. 대우조선하청 노동자들이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10만 원 인상을 요구하며 스스로 몸을 철제 구조물에 가둔다. 결과는 470억 원 손해배상을 받았다. 인상된 임금으로 163년을 일해야 갚을 수 있는 돈이다.

그래서 이번에 노동계와 야당은 ‘진짜 사장’과 협상하기 위한 노조법 2조의 개정과 합법적 파업의 범위를 늘리고 손해배상을 규제하기 위한 노조법 3조를 개정하려고 한다. 노동자가 진짜 사장과의 교섭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또한, 과도한 손해배상을 규제하여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보장하려고 한다. 이런 노조법 2조와 3조 개정을 2014년 노란봉투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노란봉투법 입법’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하지만 재계와 정부, 여당은 ‘노란봉투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파업이 더 늘어나게 되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기업경영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의 침해로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노동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일하는 사람들은 끼어 죽고 떨어져 죽고 있다. 과도한 근무시간으로 인한 과로는 국제적으로도 악명이 높다. 그래서 노동자가 같이 살자고 외치기라도 하면 불법에 손해배상 폭탄이 떨어진다. 사회교리는 공동선에 어긋나지 않는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새해에는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요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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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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