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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기억’과 ‘희망’의 지킴이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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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기원하며 새해 인사드립니다. 귀가 밝고 영리하게 뛰어다니는 토끼처럼, 우리도 올 한 해는 귀를 쫑긋 세워 주님의 복음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여기저기 잘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는 밝았지만 미래의 모습은 그리 밝지 않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평화의 모후이시며 신앙의 동반자이며 전구자이신 성모님께서 함께 계실 것을 믿기에 희망을 갖습니다. 성모님과 함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감사하고 감탄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너무 먼 앞만 내다보거나 너무 빨리 가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성장’과 ‘발전’에만 집착하기보다 ‘성숙의 시대’를 말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해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지난 2014년 한국을 방문해 주교님들께 “기억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기억’과 ‘희망’, 이 두 단어는 그리스도교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입니다. 하느님은 창조 사업으로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존재(Imago Dei)임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또 다른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고 어떠한 차별과 폭력, 멸시와 혐오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또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당신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수난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자 생존 전략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기억함’은 순종하는 삶이며, ‘잊어버림’은 불순종이며 멸망의 길입니다. 긴 광야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거역하고 원망한 것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던 과거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하느님이 주신 사랑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미사 역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기억’하는 성사입니다. 이처럼 ‘기억’한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며, 구원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기억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면 상대방과 했던 말과 약속을 기억하며 그 기억대로 살아갑니다.

‘희망’ 역시 우리 그리스도인이 간직해야 할 정신적 지표요, 끈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문 입구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여기 들어오는 그대, 모든 희망을 버려라!” 희망도 꿈도 비전도 없다면 그곳이 곧 죽음이며 지옥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교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죽음보다 강한 희망, 어떤 고난과 역경에서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희망을 간직하고 꿈꾸며 기다리는 삶입니다. 2023년에도 수많은 어려움과 도전이 우리를 막아서겠지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희망하며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결국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023년을 시작하는 모든 그리스도인 여러분! 그분을 ‘기억’하고 ‘희망’하듯,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기억과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줍시다. CPBC도 여러분들과 함께 세상과 교회 안에서 최선을 다해 ‘기억과 희망’의 사명을 이어가겠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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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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