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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곤의 불편한 이야기] 믿음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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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한 술자리, 곁에서 잔을 기울이던 후배가 불쑥 내게 물었다. “형은 정말 하느님이 있다고 믿어요? 성당에 그렇게 꼬박꼬박 나가니 말이죠.” 오랫동안 방탕하게 살던 인간이 몇 년 전 갑자기 냉담을 끝내고 나름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재개한 모습이 신기했을 것이다. 하긴 나도 신기한 건 마찬가지다. 우물쭈물 대답할 말을 고르는데, 후배는 “주일마다 성당 가서 위로도 받고 마음의 평화도 얻는 게 좋아서죠?” 하고 혼자 결론짓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닌 데다 또 ‘믿음’이란 것을 어떻게 한두 마디로 설명할까 싶어 잠자코 대답을 삼켰다. ‘그러게, 믿음이란 게 대체 무엇일까?’

그날 내가 하려던 말은 이랬을 것이다. 믿음이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 나도 아직은 하느님을 확신하는 건 아니라고. 진실을 고백하자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미사 때마다 입으로 신앙고백을 드리지만, 나는 아직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존재를 완전히 믿을 수 없고, 동정의 처녀가 홀로 아기를 잉태했다는 것도 믿기 어려우며, 그 아들이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믿을 수가 없다. 결국 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사실을 하나도 믿지 못하는 반푼이 신자인 셈이다. 오래전 군종병 시절에도 군종 신부님께 부활을 정말 믿으시냐고 감히 여쭌 적이 있다. “믿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믿게 되었어. 그것을 의심 없이 믿는 게 더 이상하지. 자네도 믿게 될 거야.” 신부님의 대답에 적잖이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다.

믿음이란 정말로 무엇일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히브 11장) 이 유명한 구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확신에 찬 어조로 비가시적인 것, 불가능한 것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며, 믿음의 선조들이 그것을 증명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예수님의 손을 만져보고서야 부활을 믿은 토마스 사도에게 공감이 간다. 우리는 그런 불가능한 일을 믿기에는 너무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중세 신학자들은 ‘논리적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기도 했다. 유한자의 관점에서는 신을 어떻게 말해도 무한한 그분의 존재에 도달할 수 없지만, 모든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규정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는 방식으로 신을 인식할 수는 있다는 ‘부정신학’이 그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방법을 통하면 적어도 허위에 빠지지는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믿음이란 결단의 문제이고 체험의 문제일 텐데, 굳이 이런 식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믿으려 노력한다는 게 구차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나와 내 눈앞의 세상을 넘어서는 크고 완전한 존재가 있다는 신앙의 가장 일차적인 출발점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거의 절망적인 수준의 정치, 갈수록 어려워지는 살림살이와 경제, 조만간 인류 종말을 부를지도 모르는 기후위기 앞에서는 주님의 평화와 은총이 우리에게 있음을 차마 믿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니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는 말자. 의심과 회의가 없다면 믿음의 성장도 없을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이, 슬퍼하는 이에게 하늘나라가 있다고 하셨으니, 믿음과 의지의 모자람을 절절히 깨닫는 이들의 겸손함에도 크신 하느님의 뜻이 있으리라 믿고 싶다. 우리의 삶에 목적이 있는 한, 그 목적은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는 것이다. 나 아닌 남을 사랑하고 더 좋은 삶을 소망하라는 그분의 뜻에 모두 한 걸음 다가서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안희곤 하상 바오로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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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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