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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들이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놓인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영정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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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들이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추모하기 위해 주교좌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마련된 추모 공간 주위로 줄을 서 있다. |
가톨릭교회 또 하나의 큰 별이 빛을 잃는 순간 한국 교회도 슬픔에 잠겼다. 한국 교회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선종을 애도하며 미사와 기도로써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기렸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애도하며로마시각 2022년 12월 31일 오전 9시 34분, 한국시각으로는 오후 5시 34분. 새해를 몇 시간 앞두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도 이날 오후 7시 30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을 알리는 조종(弔鐘)이 울렸다. 많은 신자들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
주교회의는 1월 2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공식 빈소를 마련했다. 빈소 앞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추모하기 위한 줄이 길게 이어졌다. 빈소를 찾은 신자들은 영정사진에 성수를 뿌리고 헌화하며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추모했다. 조문을 마친 신자들은 지하성당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지하성당은 금세 조문객으로 가득 찼다. 자리가 없어 서서 기도하는 신자들도 눈에 띄었다. 기도는 성호경으로 시작해 묵주기도 5단, 복음(요한 10,11-16) 낭독, 3분 묵상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주모경과 성호경을 바쳤다.
주한 교황대사관에도 2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대사관에 마련된 추모 공간은 정부 인사와 외교 사절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됐다. 이에 따라 신자와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
각 교구는 교구 홈페이지를 통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을 알리고 추모 공간 설치, 추모 미사를 봉헌하며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기억했다.
대구대교구는 계산주교좌성당과 범어대성당, 수원교구 정자동주교좌성당, 의정부교구 주교좌 의정부성당,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 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성당, 부산교구 남천주교좌성당과 울산대리구 복산성당, 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성당, 제주교구는 중앙주교좌성당에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또한, 교구장 주례로 추모 미사를 봉헌하고 교구 내 각 본당에서도 추모 미사를 봉헌하며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위해 기도했다.
한국 주교단도 7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교황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위한 기도신자들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모든 성인과 함께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기도했다. 김춘규(마르티나, 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씨는 “굉장히 겸손하신 모습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을 특별히 좋아했다”며 “몸이 안 좋아도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려고 추운 날씨에도 명동대성당에 왔다”고 말했다.
신심 단체 회원들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직속 마포지구 성인의 모후 꼬미시움 모순여(사비나) 단장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퇴임하고 10년 동안 수도원에 계시면서 바깥출입을 안 하고 기도 생활만 하셨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며 “참으로 대단하고 우러러볼 만한 분”이라고 전했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손병선(아우구스티노) 전임 회장은 “교황님은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가르침으로 저희에게 큰 울림을 주셨기에 이번 선종 소식이 무척 안타깝고 슬펐다”면서 “주님의 양 떼를 돌보시던 대사제이자 대학자인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주님 품에서 영면하기를 기도했다”고 말했다.
수도자들도 빈소를 찾았다. 윤선옥(체칠리아,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학문적, 지성적인 부분에서 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라며 “교회 수장으로서 매우 외롭고 힘드셨을 텐데도 양 떼들을 열심히 일하셨던 교황님을 생각하며 기도했다”고 전했다.
외국인 조문객도 있었다. 한국에 관광을 왔다는 파키스탄계 호주인 사예드·사하르씨 부부는 어린 자녀들과 교황을 추모했다. 무슬림인 이들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존경스러운 인물”이라며 “자녀에게 모든 종교와 인간을 존중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싶어 빈소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황은 가톨릭교회 지도자이자 한 명의 친절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와 인류를 위해 헌신했다”고 말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세계 유력 정치 지도자와 인사들도 추모 메시지 세계
유력 정치 지도자들과 인사들이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과의 만남을 회고하며 ‘주님
포도원의 겸손한 일꾼’을 추모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선종
당일 애도 메시지를 통해 “지난 2011년 바티칸을 방문해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시간을
보내는 특권을 누렸다”며 “고인의 관대함과 환대, 그리고 의미 있는 대화를 항상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원칙과 신앙에 따라 한평생
교회에 헌신한 저명한 신학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역사상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인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2008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백악관
방문을 떠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고인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존엄성에
걸맞은 방식으로 살려면 세계적 연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며 “사랑과
자선에 대한 교황의 관심이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 찰스 3세 국왕은 2009년, 2010년 두 번에 걸친 베네딕토 16세 교황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모든 사람의 평화와 선의를 증진하고, 성공회와 가톨릭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점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선종 소식을 접하고 큰 슬픔에 빠졌다”며 “우리는 베네딕토
16세를 기도하고 공부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이어 2008년 베네딕토
16세의 유엔 연설을 언급하며 “소외된 사람들과의 연대를 외치면서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를 좁히라고 한 교황의 긴급한 호소는 지금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베네딕토 16세를 ‘위대한 영적
지도자’라고 칭송했다. 그러면서 “고인은 2009년 이스라엘을 방문함으로써 유다교와
가톨릭교회 간의 역사적 화해를 위해 온 마음을 쏟았다”며 “우리는 그를 진정한
친구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 종교 지도자들의 애도 물결도 이어지고
있다.
성공회 캔터베리대교구장 저스틴 웰비 대주교는 “현시대의 위대한
신학자 중 한 명인 교황은 글과 강론뿐 아니라 모든 일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신 분”이라고 말했다. 미국 유다교위원회는 “고인은
세계 유다인들과의 우정과 화해의 길을 쉬지 않고 걸었다”며 종교간 대화에 힘쓴
업적을 기렸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유별난 고양이 사랑을 추억하는 이들도
있었다.
고양이의 눈을 통해 베네딕토 16세의 어린 시절을 그린 아동문학가
잔네 페레고는 “베네딕토 16세는 고양이를 보면 항상 다가가서 쓰다듬었다”며 고인이야말로
진정한 ‘캣홀릭(Cat-holic, 가톨릭과 발음이 비슷함)’이었다고 CNA에 알려왔다.
베네딕토 16세는 ‘하느님의 로트와일러(독일의 맹견)’라는 별명이 있지만,
개보다는 고양이를 훨씬 더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에는
바티칸 정원에서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기도 했다. 바티칸 관계자들은 그 고양이들을
‘바티캣(Vaticats)’이라고 불렀다고 작가 페레고가 귀띔했다.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에 선출되기 전 함께 교황청에서 근무했던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은
“라칭거 추기경은 로마 거리를 걸을 때 고양이를 만나면 고향(독일 바이에른 주)
방언으로 무언가 얘기하면서 먹을 것을 주고 무리에 돌려보내곤 했다”고 회고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