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4년 9월 성 베드로 광장에서 반갑게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 OSV 자료 사진 |
프란치스코와 베네딕토 16세는 서로 존경하고 배려하면서 교회 사상 유례가 드문 ‘두 교황’ 시대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정치 영역과 종교 영역은 다르다 하더라도, 두 교황이 보여준 모범은 수장이 바뀌면 배척과 과거 지우기에 몰두하는 국내외 정치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소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언행으로 선임자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13일 새 교황으로 처음 대중 앞에 선 순간부터 베네딕토 16세를 언급했다. 그날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서 인사말을 한 뒤 “무엇보다 먼저 선임자 베네딕토 16세를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축복해 주시고, 성모님께서 그를 지켜주시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합니다”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는 성탄ㆍ부활절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면 바티칸 내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에 들러 선임자에게 인사했다. 해외 사도 순방을 떠나기 전에도 매번 수도원에 찾아가 출국 인사를 하고 축복을 청했다. 또 자신이 임명한 추기경들이 서임식 참석차 로마에 집결하면 항상 그들을 대동하고 찾아가 인사했다. 전임 교황과 새 추기경단의 만남은 바티칸의 새로운 전통이 됐다.
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 16세를 ‘집에 계신 지혜로운 할아버지’라고 부르곤 했다. 이보다 더 존경심과 친밀감이 느껴지는 호칭은 없다. 2년 전 베네딕토 16세의 사제서품 70주년에는 ‘나의 아버지이자 형제’라고 칭했다.
2018년 4월 일반 알현에서는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순례자들과 부활 인사를 나눈 뒤 ‘집에 계신 할아버지’에게도 인사하자고 제안했다.
“사랑하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도 TV를 통해 저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께 부활을 축하한다고 인사합시다. 힘찬 박수를 보냅시다.”
사실 이 날 순례자들은 프란치스코에게 더 큰 박수를 보냈다. 광장의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집에 계신 할아버지가 행여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베네딕토 16세는 2016년 한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영화 ‘두 교황’에서 보았듯 두 교황은 성향이 다르다. 신학적 해석에도 차이가 있다. 프란치스코는 진보와 개혁, 베네딕토 16세는 보수와 전통에 가깝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는 후임자의 행보에 간섭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오히려 2018년 신학자들이 펴낸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학」 시리즈 서문에 “비록 스타일과 성격은 다를지라도, 나의 재위 시절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대 사이에 내적 연속성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서적”이라고 썼다.
물론 두 교황의 관계에서 미세한 균열이 감지된 적이 몇 차례 있다. 교황청 개혁, 라틴어 전통미사 제한, 재혼(사회혼)한 이들에 대한 영성체 허용 논란 등의 과정에서 베네딕토 16세의 목소리가 표출됐다. 일부 언론은 이를 “베네딕토 16세가 마침내 침묵을 깼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대부분 보수파가 베네딕토 16세의 글과 말 중에서 일부를 확대 해석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한 것이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