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과 빈곤에 시달리는민주콩고·남수단 사목방문용서와 평화의 메시지 전달
▲ 프란치스코 교황이 2일 민주콩고 젊은이와 교리교사들을 만나는 행사장에서 젊은이들의 전통춤을 관람하고 있다. 킨샤사(민주콩고)=OSV |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전과 빈곤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이하 민주콩고)과 남수단을 찾아가 화해와 평화 건설을 촉구했다.
교황은 민주콩고 방문 이틀째인 1일 수도 킨샤사 은돌로공항에서 100만 명이 넘는 군중과 봉헌한 미사에서 “예수님과 함께라면 언제나 용서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용서와 화해를 강조했다. 민주콩고는 내전으로 피폐해진 나라다. 특히 동부지역은 지금도 반군 조직들이 광물자원과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교황은 동부지역 내전 생존자들을 만나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3년 전 15살 나이에 반군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하다 탈출한 비쥬 양은 쌍둥이 딸을 데리고 교황을 만났다. 반군에게 끌려가 성노예로 착취당한 이멜다씨는 심지어 인육까지 먹이는 그들의 만행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을 털어놨다.
교황은 이들의 증언을 듣고 한동안 비통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용서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힘들다”며 “용서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오직 은총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전 당사자들에게 “하느님과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장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촉구했다. 정치 지도자들과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민주콩고는 강대국의 놀이터가 아니다”며 “아프리카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눈을 감지 말라”고 호소했다.
민주콩고 방문은 1일 기념 미사에서 절정을 이뤘다. 정부는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미사 시작 전 고펠릭스 치세케디 대통령과 영부인도 귀빈석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등 은돌로공항은 축제장이 됐다. 참여자 중에는 공항 초원에서 이틀 밤을 새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접국 르완다와 부룬디에서 건너온 신자들도 많았다.
교황은 제단에 올라 현지어로 ‘평화, 형제애, 기쁨’을 발음한 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라는 그리스도의 말로 인사를 건넸다. 이어 “예수님의 평화는 제자들이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에 찾아온다”며 “슬픔과 체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평화의 예언적 선포를 자신의 것으로 삼으라”고 독려했다. 또 평화의 첫 번째 원천으로 용서를 강조한 후 “용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잊으라는 말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사랑으로 이웃에게 여는 문제”라고 말했다.
남수단(3~5일)에서는 난민 2500여 명을 직접 만나 “그대들이 새로운 남수단의 성장에 필요한 씨앗”이라고 격려했다.
고 이태석 신부의 선교지였던 남수단은 2011년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신생국이다. 독립 후 계속되는 내전을 종식하기 위한 2018년 협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평화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유엔은 현재 난민 2백만 명 이상, 식량 위기에 놓인 국민은 800만 명 이상으로 추산한다.
교황은 난민들에게 “여러분은 악을 더 큰 악으로 대응하지 않고 대신 우애와 용서를 선택한 사람들”이라며 그들을 ‘평화의 씨앗’이라고 칭했다. 난민촌 소녀 나쿠오레 레베카는 “남수단 어린이들이 평화와 사랑 속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축복을 내려달라”고 교황에게 요청했다.
교황은 남수단에서 영국 성공회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등 그리스도교 형제들과 함께 남수단의 평화를 기원하는 에큐메니컬 행보를 이어갔다. 교황은 “복음은 아름다운 종교 철학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현실이 되는 예언”이라며 “자르고 찢는 것이 아니라 직조하고 수선하면서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자”고 말했다.
두 나라 신자들은 물론 정치 지도자들도 교황 방문이 내전 종식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올해 86세인 교황은 오는 9월 지중해 지역 주교회의 참석차 프랑스 마르세유 방문을 앞두고 있다. 교황은 순방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기내에서 “마르세유에서 몽골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으며, 내년에는 인도 방문이 성사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