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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평화칼럼] 잘 익은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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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 농부는 땀 흘려 사과를 기른다.

다 자란 사과들은 그러다 야속한 바람에 떨어져 버린다. 그렇게 떨어져 상처가 나도 농부는 잘 알고 있다. 키우는데 정성 쏟은 만큼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잘 알지만, 겉에 난 상처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농부의 정성과 상관없이 겉이 고운 사과에 값을 더 쳐준다.

우리도 그런 것 아닐까?

겉보기에 좋은 사람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선택받기 쉬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 애쓰고 있지 않을까?

상처가 한둘 있어도 기른 농부의 정성만큼 사과는 달고 꽉 차게 자라나는 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혜택을 얼마나 제대로 받았느냐에 따라 사과는 달라진다. 햇빛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당도가 결정된다고 한다. 겉에 흠이 있어도 하느님 품 안에서 햇빛 많이 받으면 달고 흠 없이 매끄러워도 햇빛 제대로 못 받은 사과는 달지 않은 법이다.

스펙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니 바로 이 스펙이 보기에 좋은 사과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를 떠난 지금도 후회되는 일중의 하나가 입사 절차에서 스펙을 빼버리지 못한 일이다. 몇백을 뽑는데 만 명이 넘는 지원서가 몰리니 결국 서류전형에서 스펙 위주로 일차 선별을 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변명으로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마음먹고 찾았으면 방법은 충분히 있었을텐데 그냥 당연한 관행으로 여기고 바꾸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마음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돌아보면 결국 정작 중요한 것은 얼마나 내용이 괜찮은 사과로 영글었는가를 맛보지 않고도 알아내는 것이 리더로 할 일이었다.

요즘 같이 취업하기 어려운 세상에 편한 소리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자신의 됨됨이는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 혹은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상관이 없었다. 설사 남들이 깨진 사과로 보더라도 최소한 거울 앞에 섰을 때 나를 바라보며 당당하고 자신이 있는 것은 내 속이 얼마나 잘 익은 사과인가에 달렸다. 하느님 말씀은 햇빛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그 축복을 많이 받고 잘 자란 사과라는 자신감이 들면 남들의 평가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같은 일을 해도 대범하고 자신 있게 임할 수 있다. 그러면 결국 그런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태도 때문에 좋은 평가도 받는 법이다. 사과에 햇빛이 내리쬐듯이 사람도 하느님의 품 안에 있음을 자각하고 느낄 때 내면이 더 알차게 익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렇게 내면의 충실함에 대한 생각을 한다고 해도 스펙 때문에 원천적으로 기회 자체가 차단되어버리는 데 있다. 특히, 기업의 선출방식이 그렇고 일자리의 절대 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스펙이 젊은이들의 미래로 가는 통로에 개찰구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런데 죽어라 스펙을 쌓고 선택되어 입사해도 일 년 후 이직률이 평균 70라는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가 있었다. 스펙을 쌓는 쪽도 그리고 그 스펙에 몰두해서 사람을 뽑는 쪽도 결국 사과를 맛보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세상은 결국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변해 가기 마련이다. 이렇게 스펙 쌓기의 문제와 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에의 실망이 이어지다 보면 젊은이들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추세로 자리를 잡을 것이 분명하다. 창업을 하든지 자영업을 하든지 아니면 진입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비정규직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는 흐름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흐름으로 흘러가든 변하지 않는 것은 내가 어떤 사과로 영글어 가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과를 길러낸 농부인 나 자신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거울 볼 때마다 생각한다. “어이 농부! 나는 하느님 햇볕 많이 받고 자란 맛있는 사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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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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