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의 한 저녁, 로마의 주교이자 ‘새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를 잊기 어렵다.
이탈리아어로 간단한 인사를 한 뒤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들을 축복할 때였다. 하지만 교황은 잠시 멈춘 뒤 이렇게 말해 우리를 놀래켰다. “먼저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주교로서 여러분에게 축복하기 전에, 여러분이 주님께 저를 축복해달라고 기도해주세요. 주교를 위해 축복을 비는 여러분의 기도를요.” 그리고 “침묵 중에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덧붙였다.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성 베드로 광장은 갑자기 숙연해졌다. 많은 가톨릭신자들이 이 땅에서 하느님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교황이 우리에게 축복을 비는 순간이었다. 대개는 반대였다. 우리는 사제와 주교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줄 것과 축복을 청한다.
20여 년을 주교로 사목했고 주교 정년인 75세를 훨씬 넘긴 새 교황이 일반 대중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를 청한 것이었다. 당시 우리는 이 일이 그의 교황직의 본질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알지 못했다. 바로 이웃을 향하고, 특별히 취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겸손이다.
즉위 10주년을 향해 가고 있고 이제 86살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말한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10)라는 말씀을 살아가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육체적 약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인식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신뢰할 때 관계 안에서 강해진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교황은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차례차례 이러한 인식의 증거를 내어 보였다. 예를 들면, 교황이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와 교정을 청하며 의존할 때, 약함을 통해 강해지는 모범을 보였다. 이는 육체적 약함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최근 몇 달 동안 교황이 휠체어에 의존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는 휠체어를 밀어주는 누군가에게 의존했다.
교황이 전한 메시지 중 하나는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다”는 말이었는데,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야 크게 부각됐다. 교황은 주요 문서와 연설에 이 말을 남겼고, 사람들을 만나서도 이 말을 해 왔다. 심지어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에도 이러한 말을 했다. “전 세계가 더 위대한 형제가 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교황은 끊임없이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서로 그리고 모든 피조물과 화합해 살아가야 한다는 이 메시지를 우리의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노력하고 있다.
교황은 최근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서도 또 한 번 이 메시지를 전했다. 보건의료 종사자와 환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교황은 “사랑의 누룩이 된다는 것은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 어떻게 네트워크를 만들까? 교황은 “우리 모두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로, 우리 모두는 무엇이든 주고받을 수 있다”면서 “미소만으로도 무언가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누군가의 아픔은 모두의 아픔이 될 수 있고, 누군가의 도움은 모두가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세상에는 많은 질병과 고통이 있다. 육체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혼자 혹은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 특정 부류, 파벌,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이에 맞서고 있는가?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으며, 누군가 아프면 우리 모두가 아픈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이웃에게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복음의 기쁨」과 「찬미받으소서」, 「모든 형제들」을 반포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0년 동안 다른 방법, 형제애적인 방법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 세상과 우리의 현실을 착한 이와 나쁜 이로, 그들과 우리로 나누곤 한다. 「모든 형제들」을 마치며 교황이 제시한 ‘창조주께 드리는 기도’는 우리에게 좀 더 다르고 좀 더 나은 무언가를 던지고 있다.
“주님, 모든 사람을 동등한 존엄으로 창조하신 저희 인류 가족의 아버지, 저희의 마음을 형제애로 가득 채워주시어 저희가 새로운 만남과 대화, 정의와 평화를 꿈꾸게 하시고 더 건강한 사회와 더 품위 있는 세상, 기아, 빈곤, 폭력,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저희가 이 땅의 모든 민족과 나라를 향하여 마음을 열어 주님께서 저희 각자 안에 뿌려주신 선과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일치와 공동 계획과 나누는 희망의 유대를 굳건히 다지게 하소서. 아멘.”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