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는 에사우와 야곱의 이야기가 있다. 야곱이 죽을 끊이고 있을 때였다. 사냥에서 돌아와 허기진 에사우는 야곱에게 죽을 달라고 한다. 야곱은 형의 맏아들 권리를 팔면 죽을 주겠다고 한다. 장자권을 대수롭게 여긴 에사우는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버린다.
위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자권은 당시에 중요한 권리였다. 맏아들은 다른 자녀들과 다르게 상속 재산이 두 배였다. 장자권은 재산 상속권, 사제직 등을 가질 수 있는 막강한 권리였다. 그 중요한 장자권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자만이 계승할 수 있다. 즉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아들에게는 하느님의 축복까지 더해졌다.
성경뿐만 아니라 우리는 보통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관계로 바라본다. 동서고금이 일관되게 말한다. 하지만 최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다르게 해석되는 판결이 있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는 기자 출신이다. 곽상도 전 의원이 기자 김만배씨를 만났을 때 곽 전 의원은 검사였다. 기자와 검사로 만난 김만배씨와 곽상도 전 의원은 오랜 시간 친분을 유지했다. 곽 전 의원 아들이 화천대유에 입사한 것도 김만배씨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김만배씨가 있던 화천대유에 6년을 근무한 아들은 퇴직금으로 50억을 받는다. 아들이 취직하고 퇴직할 동안 아버지는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지낸 중진 의원이 된다. 검찰은 아들이 받은 퇴직금은 사실 김만배씨가 아버지에게 준 뇌물이라고 보고 곽 전 의원을 뇌물죄로 기소한다.
이 사건에 대해 지난 8일,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은 곽상도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재판부는 무죄의 이유로 곽 전 의원의 아들이 성인으로 결혼하고 출가해 독립적인 생계를 꾸려가고 있고, 받은 돈이 아버지를 위해 사용된 정황이 없기에 뇌물이 아니라고 보았다. 즉 아버지와 아들은 경제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다른 부자관계도 있다. “전두환 시대에 나 건들면 지하실” 장제원 의원 아들 장용준은 자신의 노래 가사를 이렇게 적었다. 장용준이 노래한 가사를 통해 지금 권력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어렴풋이 가늠해 본다. 시대가 좋아 무사하지 과거 군사정권의 무법천지였으면 눈에 거슬리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인가. 아들의 노래 속에서 부자지간의 당당함이 보여진다. 아버지와 아들이 경제 공동체는 아니더라도 권력 공동체가 된 그 당당함 말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분노나 허탈함이 아니다. 바로 미안함이다. 자녀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지 못하는 우리네 보통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열심히 살아온 보통 부모들은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자녀에 대한 미안함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그러기에 앞으로 남은 재판에서 법원과 검찰은 이런 국민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재판과 수사에 임해야 한다. 일반적인 사회통념과는 상당히 다른 판결이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뇌물 통로가 생겼다는 푸념처럼 우리네 보통 시민들은 더 큰 상실감에 빠질 것이다.
이미 여러 경제나 권력 공동체로서의 가족관계가 많은 이들의 상실감을 주었음을 목격했다. 공정과 상식을 주장하던 이들의 가족이어서 더욱 마음 아프다. 공정과 상식이 다시 꽃피워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