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돈에 취해 광란의 시대를 보낸 적이 있다. 1920년대 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은 초호황의 시기를 보냈다. 값싼 자동차, 세탁기, 냉장고 등 새로운 가전제품이 쏟아졌다. 치솟는 주가에 사람들은 일명 ‘영끌’을 해가며 대출을 받았다. 넘쳐나는 돈과 할부제도로 사람들은 세계 각지에서 들어온 값비싼 명품을 소비했다. 미국이 돈과 소비를 위한 탐욕에 빠져있던 이 시기를 ‘광란의 시대(Frenziedtimes)’ 또는 ‘아우성의 20년대(Roaringtwenties)’로 부른다.
광란의 시대가 끝나자 경제는 대혼란의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을 맞이한다. 계속해서 팔리지 않고 쌓여만 가는 상품들로 기업과 은행이 쓰러지기 시작한다.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났다. 과도한 채무로 집을 잃고 노숙자가 된 이들은 판자촌을 형성했다. 돈 잔치로 이루어진 화려한 파티가 끝나자 명품으로 감추었던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나는 법.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세상에 한 줄기 빛을 준 이가 나타나니 바로 도로시 데이이다. 뉴욕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도로시 데이는 대공황의 절정기에 피터 모린과 함께 ‘가톨릭 일꾼운동’을 시작한다.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톨릭 일꾼’이라는 신문을 만들고, 환대의 집과 농장공동체를 만들며 대공황으로 절망에 빠져있는 이들과 함께했다. 그러면서 도로시 데이는 세상과 교회에 이렇게 외쳤다지. “조금씩 더 가난해집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숙명처럼 한 번이면 되는 빚잔치의 역사는 어쩌자고 되풀이되는가.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광란의 시대와 대공황의 시대가 돌아오는 요즘을 보는 듯하다. 코로나 사태로 천문학적인 돈이 풀어졌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헬리콥터에서 돈이 뿌려지듯이 돈이 넘쳐 난다고 해서 ‘헬리콥터 머니’라 불렸다. 넘쳐나는 돈으로 자산 가격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주가지수는 폭등했으며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의 가격은 하루가 달랐다. 값비싼 명품 소비로 주요 백화점은 창사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다.
파티가 끝난 후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자, 경기는 급격하게 얼어붙기 시작한다. 최근 미국의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했다. 파산규모는 미국은행 역사상 2, 3위에 기록될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희망퇴직을 비롯한 조용한 해고가 이루어지고 청년 취업은 지옥이다. 역시 돈 잔치로 이루어진 화려한 파티가 끝나자 명품으로 감추었던 초라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경제 불황을 교회라고 피할 수 있겠는가. 교회도 허리띠를 졸라매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 근무하는 고위 성직자에게 제공되던 공짜주택을 폐지했다. 이유는 코로나로 시작된 재정 악화이다.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무료나 싼 임대료를 받던 바티칸 소유 주택에 살기 위해서는 일반인과 동일한 임대료를 내야 한다고 한다. 그전에 성직자에게 지급되는 생활비도 삭감했다고 한다. 바티칸도 이 정도인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는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 교황 즉위 10주년을 맞이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은 바로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교회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세상은 경제 위기로 죽느니 사느니 하는데 정교분리라며 너희 일은 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할 수 있느냐 말이다. 대공황 시절 도로시 데이의 말처럼 좀 가난해진 교회가 되어 가난한 이들, 어려운 이들에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 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영적이든 실질적 도움이든 교회는 가난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 곁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먼 훗날 후대가 오늘을 기억하길 그 시절 교회는 은총이 가득했던 ‘은총의 시대(The Glory)’였다고 말해야 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