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선 레오(보도제작팀 기자)
새 기쁨과 희망을 살아가는 부활 시기. 지난 8일 파스카 성야 미사 때 세례식 현장의 기억을 소환한다. 장장 3시간이 넘는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아흔 살 어르신의 사연이 주는 긴 여운 때문이다.
이날 수원교구 동수원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첫 부활의 기쁨을 누린 이는 구순의 김태연 마리아 어르신이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김태연 마리아에게 세례를 줍니다.” 마침내 주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순간,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첫 영성체. 귀가 어두워 사제의 말씀을 듣진 못해도 어르신의 입가엔 갓난아기 같은 미소가 번졌다.
김태연 어르신이 노구를 이끌고 성당을 찾게 된 건 먼저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의 모범이 된 며느리의 영향이 컸다. 며느리는 10여 년 동안 본당 반장과 구역장으로, 또 선교분과 봉사자로 활동하면서 기도와 독서 모임에서 묵묵히 신앙을 일궜다. 하지만 평생 독실한 불교 신자로 살아온 시어머니였기에 천주교 입교를 차마 권유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작년 이맘때 여든 살의 한 어르신 미사 참여를 돕다가 문득 시어머니가 떠올랐고, 용기 내어 말을 꺼냈다. 그토록 완고했던 시어머니 마음의 문이 열리는 순간, 며느리 황해순(로사 베네리니)씨는 “그 누구도 아닌 하느님의 뜻이었음을 깨달았다”며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세례를 받고 첫 부활을 맞은 어르신의 소망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기도와 미사를 통해 하느님을 가까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강론을 듣고 싶습니다.”
주님을 만나 더 가까이하고 싶은 희망은 구순 어르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향해 걸어가는 부활의 삶을 선사했다. 부활은 기다림의 여정이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하는 것임을. 어르신의 세례와 부활이 주는 또 다른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