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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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곤의 불편한 이야기] 미처 알아내지 못한 죄들

안희곤 하상 바오로(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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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앞두고 고해성사를 준비하는데 고민이 컸다. 한 해에 고작 두어 번 성사를 하는 주제에 지극히 평범하고 세속적인 내가 그간 쌓은 죄가 없을 리 만무했다. 주일미사 빠진 죄, 가족에게 함부로 성낸 죄, 길 가던 여성을 마음으로 탐한 죄, 자주 기도하지 않은 죄, 교만한 죄….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도 이런 것들이 죄일까. 지극히 인간적인 입장의 죄가 대부분일 것이다. 친구가 우스개로 말했다. “하느님은 관심 없어. 세상 돌보느라 얼마나 바쁜 분인데 그깟 자네 죄에 신경 쓰시겠어?” 본당 신부님도 주일미사 빠지고 누구 욕하고, 그런 것 좀 제발 고해하지 말라신다. ‘이밖에 미처 알아내지 못한 죄’로 모두 퉁 쳐도 괜찮다고 하면서.

과연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죄로 여기는 것들 대부분이 그저 인간적인 실수와 결함 때문에 저지른 작은 오점들인데, 설마 자비로운 주님이 이것들을 단죄하실까. 우리 죄는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훨씬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다. 가난한 이웃을 돕지 못한 죄, 육식을 탐한 죄, 희희낙락 골프 즐긴 죄, 전기와 가스를 펑펑 써댄 죄, 투표 잘못한 죄. 그러나 개인으로서 특별히 손가락질받을 일도 아닌 이런 것들이 무슨 죄일까.

오늘날 우리의 삶은 거의 지구적인 범위로 얽혀 있어서 나의 행위가 선한 의도와 달리 뜻하지 않은 결과를 빚어내기 일쑤다. 불의한 세상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 불의일 수 있다. 내가 오늘 저녁에 먹은 소고기는 아마존 밀림을 개간하고 얻은 사료나 제3세계 가난한 이들이 먹어야 할 곡물로 키운 소이고, 신부님 대접하겠다고 친 골프는 우거진 숲을 밀어버리고 하루 800~900톤의 물을 펑펑 써대는 일에 동참한 것이며, 매일 편리하게 이용하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들이 쌍욕을 먹어가며 수년간 싸운 결과이다. 나아가 수백 명의 젊은이가 죽음 앞에 내몰렸는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는 건 지난번 내가 던진 한 표 때문인지 모른다.

출근길 아침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팻말을 들고 전도하는 개신교인을 본다. 나는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여 포교를 하는 모든 종교는 사이비라고 감히 단언한다. 종교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슬프고 아픈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우주와 신이 내려주신 소중한 당신의 삶을 결코 포기하지 말고 선을 이루라고 말이다. 그러나 오늘의 종교는 신의 뜻을 과장하여 우리의 불행이 하느님이 주신 시련이고 신의 깊은 뜻이 있다고 주장한다.

원 참, 하느님이 왜 일부러 우리를 고난에 빠지게 하신다는 말인가. 그런 건 없다.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개인의 불행을 나의 신심 부족, 나의 모자란 탓으로 돌리며 신앙을 개인화하는 것을 흔히 본다. 사회구조 내지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개인화하는 것은 신앙인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가령 노숙자, 장애인, 빈곤층의 문제는 그들의 탓인가? 교회는 영혼의 문제야말로 교회의 전문 영역이라 여기기에 그 해법도 개인화하고 내면화한다. 그러나 심각한 불평등, 기후위기, 차별, 혐오, 전쟁 등 세상을 뒤덮고 있는 죄악들을 우리의 지극한 영혼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구조가 빚어낸 악을 도외시하고 사회적 실천 없는 개인의 순수성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주노라고 하신 ‘평화’가 단순히 분쟁이 없는 상태나 내면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우리 모두가 안다. 우리는 지금도 미사 때마다 주님의 평화를 되뇐다. 그것은 불의와 고통이 제거된, 모두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라는 가르침이었다. 나는 기도한다. 주님의 진정한 평화를 우리 손으로 이룰 수 있기를. 지난 일 년여의 평화칼럼 기고를 이것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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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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