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사순 시기에 강원도 화천에 있는 하나원을 오랜만에 방문했다. 하나원의 정식 명칭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北韓離脫住民定着支援事務所)로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서 잘 살도록 ‘교육’하는 곳이다. 남성들만 수용하는 ‘화천 하나원’의 대지는 넓고 건물도 웅장했다. 사실 북한이탈주민 입국자 수는 2012년부터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인 작년과 재작년에는 겨우 60명 정도가 입국했다고 한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씨라 삐죽한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하나원이 더 스산하게 느껴졌다.
그날 ‘천주교반’에는 두 명의 남성이 찾아왔다. 교육생 수가 워낙 적으니 귀한 ‘예비 신자’였다. 개신교나 불교가 아닌 천주교로 찾아온 이유를 물으니 더 젊어 보이는 사내가 오래전 남한에 먼저 온 아버지에게 천주교가 제일 낫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소년 시절 헤어졌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이 상기되는 것 같았다. 다른 남자는 사람 좋아 보이는 ‘아들’을 따라왔다고 말했다. 조금 어색한 인사를 나눴고 미사 전 ‘교리’ 시간이 시작됐다.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이어졌는데, 마침 한미연합 군사훈련 기간이라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생각도 나누었다. 한미가 훈련을 하면 북에서는 비상상황으로,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서 ‘갱도’ 같은 곳에서 한 달, 두 달을 지냈다는 경험도 나왔다. ‘따라온’ 남자는 ‘무력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다가 갑자기 십자고상을 가리키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십자가는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닙니까? 왜 저렇게 고통을 받는데, 저런 사람을 섬긴다고 합니까?”
그리스도교를 제대로 접해 본 적이 없었지만, 십자가의 강렬한 인상에 의문이 들었던 모양이다. 종교가 의미 없는 사회에서 온 그에게 ‘부조리’한 구원의 상징,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두서없이 설명하면서 이 남성들이 세례를 꼭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겪었을 인생을 그려 보면,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의 의미를 어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느낌도 받았다.
도살당하는 어린양처럼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 다시 살아나신 주님의 첫 인사말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이다. 이 세상의 평화가 너무 멀게 느껴지지만, 신앙인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포기하지 않는다. 분단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 이 땅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우리와 함께!’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