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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성소 주일에 드리는 당부(오창익 루카,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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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주일이다. 생명의 계절에 새로운 시작을 기리니 좋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신부나 수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엄청나게 줄었다. 주일학교에 나오는 청소년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니 말할 것도 없다.

출산율이 낮아졌고 학령인구가 줄었다지만, 성소자는 더 가파르게 줄었다. 당장 신학교 상황이 심각하다. 서울, 광주, 대구, 수원, 인천, 대전가톨릭대 등 전국 6개 신학교는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다. 여성 비중을 늘리고 정원을 줄였는데도 그렇다. 대전가톨릭대는 입학 정원이 40명인데, 지난 3년 동안 평균 9명이 입학했다. 전국을 통틀어도 신학교 입학자는 93명밖에 되지 않는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을 감안하면, 한국 천주교회의 앞날은 어둡다. 교구별로 앞다퉈 신학교를 만들던 게 얼마 전인데, 폐교를 넘어 교회의 미래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고약한 현실이다.

1970년대부터 30여 년 동안 한국 교회는 역동적이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교세는 확장되었다. 신학교에 가겠다는 젊은이들이 줄을 섰다.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 천주교회가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는 것처럼 교회는 ‘야전병원’ 역할을 했다. 주교와 신부들은 문제 해결사라도 되는 것처럼 온갖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민원을 들은 신부들은 뭔가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저런 민원이 모이고 쌓이는 곳이 바로 교구청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책상에는 민원서류와 탄원편지들이 쌓였다. 김 추기경은 파키스탄 사형수처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만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운동권 학생의 석방까지 챙겼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려고 애썼다. 명동성당에 상계동 철거민들이 솥단지를 걸어놓고 천막생활을 한 것도, 명동성당이 단골 농성장이 된 것도 모두 교회 구성원들의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엮은 결과였다. 한동안 교회는 멋있었다.

지금은 아쉬운 게 많다. 장상들은 대개 관리자 모드에 충실하다. 주교의 역량이 대차대조표 보는데 달린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교회 정체성을 빛내주던 사도직 단체들은 침체되고 외곽으로 밀렸다. 가톨릭노동청년회, 가톨릭농민회, 천주교 도시빈민회 등이 그렇다. 부의 양극화로 가난한 사람들은 더 구석으로 내몰리는데도 그렇다. 반면 근사한 직업을 가졌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들의 모임은 활성화되었다.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실업인 등의 역할이 늘어났다. 인구 대비 신자 비율보다 국회의원 중 신자 비율은 몇 배나 높다.

그래서일까. 주교와 신부의 삶도 예전 같지 않다. 맛난 것을 즐기고 골프 치는 사람이 많아졌다. 주교나 신부가 골프를 치는 건 그저 평범한 취미가 되었다. 오히려 신부의 골프에 대해 뭐라 하는 게 이상한 일이 되었다.

주교와 신부들이 삶의 태도를 바꾸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 좋은 것 먹고 마시고 골프 치러 다니는데 열심인 데서 벗어나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옮기고 실천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게 멋지게 산다면, 따르지 않을 사람이 없다.

한국 천주교회가 성소자 급감으로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스무 살 시절에 노래했던 것처럼 진세(塵世)는 물론, 이 몸마저 버렸다고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오늘도 신자들은 ‘성소를 위한 기도’를 바치며 마음을 모을 거다. 그 마지막 대목이다. “주님의 몸인 교회에 봉사하며 도움과 사랑을 애타게 바라는 이웃들에게 헌신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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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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