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 스테파노(보도제작팀 기자)
강릉 산불 현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여간 무겁지 않았다.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화재 현장이 자꾸 연상되어서다. 기우는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경포대 건너편 산자락을 따라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처참히 드러나 있었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뒤틀린 주택, 휑하니 뼈대만 남은 펜션, 상가 계단은 검게 그을리다 못해 아예 숯으로 변했다.
특히 초당본당 교우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주택 4채와 농막 1채가 전소했다. 3대에 걸쳐 터전을 일구던 남영석(리노)씨도 하루아침에 집을 잃었다.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와 함께 17일 남씨 집을 찾았다. 지붕은 폭삭 내려앉았고 열기로 굳어버린 소금 덩어리와 검게 타버린 옥수수들이 그날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해주고 있었다. 남씨가 불탄 집에서 챙긴 건 부모님 액자 사진과 서류 몇 장뿐이다. 어머님을 모시고 황급히 몸을 피하느라 다른 것을 챙길 겨를조차 없었다.
아쉽게도 남씨를 직접 만나진 못했다. 아직 경황이 없을 것이라는 현지의 조언 때문이다. 어렵게 통화를 했다. 예상대로 가라앉은 목소리는 생기가 없었다. 그저 기운 내시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자꾸만 남씨 집이 있던 곳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다음날 다시 전화했다. 우선 그동안 머물던 임시 대피소에서 집 근처 펜션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전했다. 남씨는 하루빨리 정신을 차리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놀란 어머니를 진정시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나마 밭농사는 화마를 피했다. 어느 정도 정리되면 밭농사도 챙길 생각이다. 새 터전 마련도 해결과제다. 집터 한편에 임시 컨테이너라도 설치할 계획이다. 남씨처럼 화마를 딛고 재기를 위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이들에게 많은 기도와 관심이 필요한 때다. 비록 아픔은 겪었지만, 그 터전에서 삶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