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실바노((재)같이걷는길 이사장)
지난 어느 주일 아침 미사 시간을 기다리느라 줄 서 있는데 예상외로 쌀쌀했다. 등허리를 파고드는 찬바람이 매운 날은 성당 마당 건너 서점에 들어가 핑곗김에 한기를 잠시 피한다. 명동대성당에 가면 한쪽은 미사 시간 기다리는 신자들이 줄을 서고, 마당을 가로지른 반대편에는 식사를 기다리는 노숙인들이 줄을 선다. 서점 안에서 그 광경을 같이 내다보던 나이 지긋한 두 분이 대화를 한다.
“한쪽서 그래도 저 사람들이 허기를 면하니 성당다운 일 하는 게 좋네.”
“나 어릴 때 부산에 피난 온 사람들이 넘쳤어. 서울서 잘살던 사람이나 없이 살던 사람이나 부산서는 다 똑같이 거지꼴의 피난민이었지.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쌀을 퍼서 옆 피난민 동네에 가져다주면 말이야. 사람들이 참 같아도 다르다고 하셨어. 서울서 잘살던 사람들은 쌀 한 바가지를 주면 바로 반을 떼어내 집어넣는대. 아껴서 다음에 먹는다고.”
“하긴, 그렇게 하니 부자가 됐었겠지.”
“더 들어봐. 그런데 서울서 어렵게 살던 사람에게 똑같이 쌀 한 바가지를 주면 바로 반을 덜어내서 옆에 굶는 친구 집에 갖다 주고 오더래. 그래서 천국은 부자가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고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어.”
엿듣는 이야기에 마음까지 따뜻해져서 다시 성당 마당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잘살고 있나 또다시 돌아보게 된다.
몇 해 전 일이다. 아침내 봉사자들과 만든 도시락을 나눠 드리며 다니는데, 신부님이 나보다 열 살쯤 많아 보이는 분의 손을 잡고 오시더니 “이 분 방에 잠깐 들어갑시다” 하며 그분의 쪽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들어서 보니 한 사람 몸을 펴기도 어려운 방에 빈 구석 하나 없이 물건들이 가득하다.
신부님이 활짝 웃으며 “이 분은 잠시도 쉬질 않아. 어찌나 부지런한지 이걸 다 주워다 닦고 정리해서 이렇게 모으잖아. 없는 게 없어. 하하. 손재주가 참 좋아, 젊어서 안 해 본 것 없이 참 고생 많이 했지.” 그러자 갑자기 그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더니 급기야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어찌할 바 모르게 어색하고 한편으론 무더위보다 더 마음이 습해졌다.
쪽방촌에 점심 가져다 드리는 방 중에는 그분 방 정도 정리되고 깨끗한 방은 거의 없다. 그분처럼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당시 기초생활수급 혜택의 50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에 보태어 20~30만 원을 추가로 번다. 20만 원 내외의 방값을 내고 남은 돈으로 한 달을 살아가야 한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액에서 방세 내고 남은 고작 20만 원 정도가 한 달 사는 돈의 전부다.
잠시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방 주인 앉은 모양새가 영 불편해 보인다. 세 사람이 앉으면 무릎 닿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 공간인데 손님 편히 앉으라고 자신은 구석에서 무릎을 세우고 벽에 바싹 붙어 엉거주춤 앉아 있다. 그러니 결국 배려는 내가 받고 앉은 시간이었다. 그날은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방 주인의 배려하는 마음 씀이 참 고맙고 따뜻했다. 이렇듯 배려는 가진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마음이 넉넉한 사람의 것이다.
아끼고 절약해서 사는 검소함은 누구에게나 미덕이다. 돈을 버는 것도 성실함과 노력의 결과라고 보면 그 자체로도 칭찬받을 일이다. 문제는 그 삶 속에 나와 남이 얼마나 적절하게 공존하는가일 것 같다. 하느님이 말씀하시듯 내 이웃들이 다 형제이니 그 형제를 향한 배려나 공감이 결국 중요한 것이다. 부자라고 해서 다 나쁘다는 말씀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것이 많을수록 모자라는 사람의 삶에서 멀어지고 공감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 부자가 될 때까지의 아끼고 쌓아올리던 삶의 습관이 부자가 되고 나서도 습관적으로 더 큰 부를 위해 쌓아 올리는 데만 관심을 가지기 쉽다. 아마 이런 삶의 습관을 돌아보고 조금 더 주변의 형제들에게 눈을 돌려보라는 말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