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수단 내전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던 우리 교민 28명이 지난달 25일 무사히 귀국했던 ‘프로미스’ 작전을 기억하실 겁니다.
프로미스 작전 때 유일한 한국인 수녀가 있었습니다.
성녀 마더 데레사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 소속 윤영수 수녀였는데요.
윤 수녀를 저희 CPBC가 단독으로 인터뷰했습니다.
이힘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지금도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 카르툼 지역을 탈출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 윤영수 수녀는 아찔했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윤 수녀가 다섯 명의 외국 국적 수도자들과 사도직 활동을 펼치던 현지 결핵요양소와 고아원까지 총탄이 빗발쳤다고 증언합니다.
<윤영수 욥 수녀 /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단 선교사>
“내전 때 꼼짝달싹도 못했어요. 폭탄에다가 총알이 벽을 다 뚫은 상태고 그래서 전화도 끊기고 전기고 끊기고 연락이 안 돼서 이집트에 계신 수녀님을 통해서, 유엔을 통해서 버스를 어떻게 좀 휴전하자고 했던 72시간 내에…”
총성이 멈춘 틈을 타 잠시 요양소 주변을 지나던 이웃은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윤영수 욥 수녀 /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단 선교사>
“차(茶)를 팔면서 살아가는 아줌마였는데 이틀이나 삼일 뒤에 계속 썩는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요양원에 있던) 청년이.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까. 썩은 냄새가 나는데 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집 밖으로. 총을 계속 쏘니까. 그래서 냄새가 나서 총탄이 조금 멈췄을 때 찾아보려고 돌아보니까 한쪽 구석에서 벌써 돌아가신 거였어요.”
내전 발발 일주일여 만에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던 것은 수단 현지 대사관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정부의 발 빠른 대처 덕분이었다고 말합니다.
<윤영수 욥 수녀 /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단 선교사>
"저희 대사님께서 참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총탄이 막 쏟아지는데도 방탄차 타고 현지 직원하고 같이 나가서 한국인들을 대사관으로 다 모으기 위해서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저는 대사님이 밖에 나가시고 그러면 계속 무릎 꿇고 정말 그렇게까지 매달리듯이 기도한 적이 없을 만큼 눈물 날 정도로 자비의 기도, 묵주기도를 끊임없이…"
무슬림 국가인 수단(북수단)에는 가난한 그리스도교 신자인 남수단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전으로 일거리조차 없는 이들이 많을 거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윤영수 욥 수녀 /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단 선교사>
"가난한 우리 남수단 사람들이 북수단에서 사는 게 아랍 사람들 집에 가서 청소해주고 빨래해주고 이런 일 하면서 매일 돈을 받아서 애들 밥을 먹이고, 또 남자애들이 학교를 안 가는 아이들은 길거리 다니면서 차를 닦고 그 돈으로 먹고살았는데 전쟁이 나면서 그 사람들은 일거리가 없잖아요. 아랍(사람) 집에도 가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고 어떻게 먹고 살까, 한 끼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생각하면 진짜 마음이 아프고…"
현지 결핵요양원과 고아원에 총탄과 포탄이 끊임없이 떨어질 정도로 위험하지만 그럼에도 윤 수녀는 수단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더욱 가난한 이들을 돌보기 위해서입니다.
<윤영수 욥 수녀 /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단 선교사>
"가서 저희 집에 고아원 아이들하고 우리집 결핵 환자들하고 적어도 70명 정도인데 누가 살아계신지 누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른 상태고 그런 상태인데다가, 일단 가서 저희 식구들 돌봐줘야죠."
수단 상황이 안정되면 곧바로 돌아가기 위해 내일 이집트로 출국하는 윤 수녀는 한국의 신자들에게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윤영수 욥 수녀 /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단 선교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의 사랑과 희생인데 그런 희생, 조금 아껴주시는 거 전기 조금 아껴주시는 거 특히 음식들, 거기 애들 한 끼도 못 먹어요. 애들에게 먹었냐고 하면 말로는 먹었다고 하는데 사실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 아이들도 많고 사실은 한 끼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음식 좀 절제해주시고…"
CPBC 이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