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성당에 발걸음 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첫 미사를 드렸던 곳은 도쿄에서 유일하게 매주 한국어 미사가 집전되는 동경 한인성당. 일본 가톨릭의 본산인 도쿄대교구 성모 마리아 주교좌 대성당 안에 있는 한국 재외국민 공동체였습니다. 한국인과 어울릴 일이 좀처럼 없는 환경에서 오래 지내왔던 탓인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모국어에 반가움이 먼저 피어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내 걱정이 잔뜩 섞인 분심이 마음을 어지럽혔습니다. ‘오길 잘한 걸까? 이곳에서 믿음을 찾아갈 수 있을까?’ 과연 가톨릭의 문화와 이전까지 그 어떤 인연도 없었던 저는 입당송이 울려 퍼진 순간부터 낯선 세상에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순서와 형식으로부터의 자유가 조금 더 폭넓게 보장된 개신교의 예배 형식만이 구세주를 기리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손님’의 눈으로 본 미사는 특유의 웅장함과 장엄함으로 주님의 거룩함을 기리는,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충동적으로 참석한 자리였으니 당연히 전례나 기도문 등을 숙지하고 갔을 리 없었기에 성호경부터 자비송까지 저는 입도 뻥긋할 수 없었습니다. ‘괜히 왔나 봐…’ 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신부님께서 오르간 소리에 맞춰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이라며 대영광송의 시작을 알리셨습니다.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이윽고 이어진 형제자매님들의 노랫소리가 저의 귀와 가슴에 다가와 크게 울렸습니다.
2000년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오래된 기도문의 한 구절. 그 찰나의 한 줄이, 그동안 갈구해왔던 주님의 뜻을 명징하게 저에게 전해주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땅 위의 당신께서 빚으신 모든 것들을 사랑하신다고. 그리고 그들의 평화를 아버지를 믿는 이들과 함께 바라신다고. 그토록 의심하고, 때로는 부정하고, 진리로부터 멀어지기를 반복했던 지난 믿음의 세월.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회의감과 함께 두려움이 피어올랐습니다. 주님을 외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언젠간 잊힐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심이 늘 제 안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그저 원죄인 나로부터 시작된 지극히 인간적인 오판일 뿐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그 어떤 순간에도 인자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당신의 자녀인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당신의 부름에 순명하여 그 너른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고 계셨던 것이죠.
그렇게 저의 첫 미사는 안도의 마음과 감사, 사랑이 잔뜩 뒤엉켜 눈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길로 저는 우스꽝스럽게 퉁퉁 부어오른 눈을 한 채 곧바로 사무실로 달려가 예비신자 교리를 등록했습니다. 대영광송에 감화되어 세례를 결심했다고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그 단순한 계기에 웃음을 터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베네딕타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영을 얻은 지금도 저는 세상 고난과 시련 앞에서 분심이 미움을 피울 때면 대영광송을 떠올리며 하느님에게 기도를 청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의 평화를 진심으로 소망할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로 인하여 제가 베푼 마음이 아버지를 드높이는 데에 쓰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박은선 베네딕타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