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5일 아프리카 수단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긴급히 정부가 제공한 수송기를 타고 한국으로 온 교민 28명 가운데 수도자가 있었다. 현지에서 15년째 선교사로 활동해온 윤영수(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녀다. 수단의 내전은 선교 중인 윤 수녀를 비롯한 선교사들에게도 큰 피해를 입힌 것이다. 윤 수녀와 교민들은 탈출 이틀 전인 4월 23일 수단의 수도 카르툼을 빠져나와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이틀 만에야 고국에 도착했다. 윤 수녀는 도착 직후 서울대교구 수도회담당 교구장대리 구요비 주교를 만나 혼란에 빠져 다급했던 수단의 상황을 전했다.
지옥 같은 전쟁터를 탈출한 안도감도 잠시. 윤 수녀의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 찼다. 수단을 탈출하면서 뒤로하고 온 사람들 생각으로 가득 차서다. 내내 차분했던 윤 수녀의 목소리도 수단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엔 급한 마음이 묻어났다. “저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나환자들이 70명 가까이 됩니다. 기도하면서도 얼굴이 아른거려 눈물이 날 정도예요.”
윤 수녀는 종신 서원한 2008년부터 지금까지 15년째 수단 카르툼에서 선교해왔다. 내전이 발생한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윤 수녀는 카르툼을 1960년대 한국의 시골처럼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곳이라고 전했다. 한밤에도 30도를 넘나드는 날씨 탓에 옥상에서 잠을 청해야 하지만, 그 위로 펼쳐진 별들을 보며 윤 수녀는 고단함이 평화로 느껴졌다. 윤 수녀는 한 고아원에서 굶주린 아이들을 돌보고, 인근 요양소에서 결핵과 나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간호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왔다.
평화가 무너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4월 중순 발생한 수단 내전의 소용돌이는 카르툼을 덮쳤다. 전쟁을 피해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을 옆 도시인 옴두르만의 요양소로 옮겼지만, 전쟁은 심각해져만 갔다. 윤 수녀는 “밤낮 가리지 않고 귀가 아플 정도로 총탄 소리가 들렸다”며 “집 안까지 총알이 날아들어 다친 사람도 많았다”고 위험했던 순간을 전했다.
한국 정부는 즉시 탈출을 권유했다. 한시가 멀다 하고 윤 수녀의 안위를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윤 수녀는 쉽사리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아이들과 환자를 두고 선교지를 떠날 수 없다는 마음이 저를 계속 붙잡았어요. 하지만 현지에 남아도 여권이 만료되면 선교를 할 수 없기에 우선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탈출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교전이 계속된 탓에 대사관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총소리가 빗발쳤다. “저는 무사히 대사관에 도착했지만,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하는 바람에 남궁환 주수단 대사님은 계속 바삐 움직이시고, 그때마다 저는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자비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정말 숨 쉬듯 기도했던 것 같아요.”
윤 수녀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하르툼은 폐허 그 자체였다. 건물들은 무너졌고 길 곳곳에는 부상자들이 누워있었다. “내전 발생 일주일이 지나서야 나왔습니다. 다시 일주일 뒤에는 공동체의 다른 수녀님들도 하르툼 탈출을 시도했는데, 공항이 무너져 버스로 이집트까지 이동했다고 해요.”
고생 끝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윤 수녀는 본지와 인터뷰 직후 9일 다시 이집트로 출국했다. 바로 수단에 입국할 순 없지만, 전황이 나아지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바로 선교지로 가기 위해서다. “선교사가 선교지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얼른 수단으로 가서 현재 연락이 안 되는 아이들과 환자들이 모두 모두 무사한지 알고 싶습니다. 안전하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