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에 코로나19 엔데믹 시대를 앞두고 사목회 주관으로 코로나 상황으로 흩어지게 된 ‘구역 활성화’라는 주제로 본당 자체 연수회를 했다. 이후에 여러 차례의 모임을 거쳐 위원회가 조직됐고 주님 부활 대축일에는 전 신자 식사 나눔과 바자회를 동시에 열기로 했다. 여러 구역을 한 조로 묶어 정해진 음식을 장만하고 지역 주민들도 초대해 행사 취지를 알리기로 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미사를 성대하게 거행한 뒤 전 신자는 정해진 자리에 앉아 주님 부활의 기쁨과 함께 성찬을 나누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이들의 일손과 자원봉사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신자들이 환한 미소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웃음바다를 이루며 친교의 시간을 보냈다. 초대받고 온 다른 본당의 신자들이 늦은 오후에 밀물처럼 몰려왔다. 온통 잔칫집 분위기였다. 신자 한 분이 하늘나라로 떠나셨다는 소식만 제외하고.
성당 내 가족이 이마를 맞대고 엠마오를 어디로 갈 지 궁리하다 결론을 내리지 못했었는데 대축일 행사로 분주하게 움직인 탓에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또 장례가 발생한 상황이라 월요일에는 각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다음날 부산교구의 절친 신부에게서 엠마오 장소를 전동성당으로 정해 신자들과 함께 왔다는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나섰더니 그곳에는 다른 교구의 신부님과 수녀님들도 꽤 있었다. 오후에는 엠마오를 떠나는 마음으로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미사를 정성스럽게 봉헌하였다. 평소에 성찬례에 자주 참여한 고인은 주님의 몸을 정성껏 받아 모셨기에 직천당의 영광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보며 영생을 누릴 것이다.
얼마 전에 70대 이상의 여성 단체인 성모회의 총무가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에 엠마오 장소로 초남이성지를 가고 싶다고 했었다. 다음날 본당 차량을 직접 운전하며 예쁘게 단장하고 나선 미녀들(?)을 모시고 성지로 떠났다. 들녘에 핀 꽃들을 보며 “와, 이쁘다!” 하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항상 기도로 똘똘 뭉치고 온갖 잡일을 불평 없이 거들어주던 그들이 오랜만에 야외로 나간다는 설렘에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배꼽을 잡고 웃는다.
성지 담당 신부님이 주례하는 미사에 참석하여 칼 아래 스러지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순교자들에 대한 감동어린 강론을 듣자 모두가 숙연해진다. 순례 온 이들과 점심을 함께 먹고 나자 뜻밖의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 세 분(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윤치헌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발견된 바우배기 현장을 직접 견학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신부님의 복음 선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구동성으로 “이게 어찌된 일이야. 아무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유해 발굴 현장을 사진으로만 보았는데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다니, 이쪽으로 엠마오 오기를 잘 했네. 하느님, 감사합니다.” 발굴 현장에 이르는 좁고 협소한 길을 신부님이 직접 안내해 주시고 모진 박해에도 후손들에게 신앙을 물려준 순교 선열들의 넋을 위로하며 그분들을 기리는 새성전을 세우려는 계획까지 들려주셨을 때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던 미녀들은 순교자 찬가를 힘차게 부르고 있었으리라.
“길에서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해” 주시며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시는” 주님을 만나 의심과 두려움으로 닫혀진 우리 마음의 눈이 열리고 마음이 불타올라 살아계시고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는 엠마오 여정이 매일 지속되어야 한다는 미녀들의 수다는 돌아오는 길에도 멈추지 않았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