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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가난한 전쟁의 피해자 / 강주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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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동부 도코나미(床波) 해안에는 ‘피아’(Pier)라고 불리는 낯선 구조물이 있다. 조세이(長生) 해저탄광의 환기구인데, 바다 위에 솟아 있는 두 개의 콘크리트 덩어리는 80여 년 전에 발생했던 수몰사고 흔적이다.

1940년대 우베시에는 59개의 탄광이 있었다. 그 중에서 조세이 해저탄광은 열악한 작업조건으로 악명을 떨쳤던 곳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막장이 해저 10여㎞에 뻗어 있었고, 갱도가 너무 얕아 지나가는 배의 엔진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일본인은 작업을 기피했기 때문에 탄을 캐는 사람의 다수는 조선인이었다. 1939년부터 3년간 우베에는 조선인 1258명이 ‘강제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1942년 2월 3일 오전 탄광 갱도가 무너졌다. 무리한 채탄작업 때문에 바닷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탓이다. 작업 중이던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무너진 갱도 아래 깔렸다. 희생자 183명 가운데 136명은 조선인이었고 47명은 일본인이었다. 사고 직후부터 수면 위 환기구를 통해 3일간 물기둥이 솟구쳐 올라왔다. 갱도 입구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몰려나와 오열했지만, 탄광회사는 구조 노력 대신에 갱도로 들어가는 입구를 널빤지로 막아 버렸다.

기록과 증언에 의하면, 채탄 현장에는 수몰사고 이전에도 자주 누수가 발생했었다. 사고의 위험을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작업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당시는 일제가 진주만을 공습한 지 두 달이 채 안 된 시기였고, 석탄은 해군 함정의 연료와 제강용 환원제로 쓰이는 중요 광물자원이었다. 이처럼 전쟁이 불러온 광기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사실 태평양전쟁 발발 이전에 이미 미국은 일본에 강력한 경제제재를 시행했었다. 1941년 7월 무역 금수조치로 인해 일본의 석유 수입은 90가 감소했는데, 최강대국과 전쟁이 한창인 일본에게 석탄 생산은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최근 진행한 ‘시모노세키-히로시마 평화순례’에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현장을 방문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교구장 이기헌(베드로) 주교와 ‘평화사도’들은 ‘피아’가 솟아 있는 푸른 바다에 헌화하며 위령성가를 불렀다. 이 순간 비참한 전쟁을 치르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지 않은 한반도에서도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약자들이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해 자비하신 주님의 위로를 청한다.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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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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