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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나의 구원이자 가장 큰 원망이었던 예수님(박은선 베네딕타,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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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하느님을 따르리라 결심한 후에도 마음은 수백, 수천 번 구세주를 갈망하고 또 원망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특히나 일평생 주님을 섬기는 일을 열심히 하였던 아버지가 불치병으로 알려진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판정을 받던 날은 마음에 피가 맺힌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생생하게 알게 된 날이었습니다.

“이것도 다 주님의 뜻이겠지.”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저에게는 그저 그 모든 말이 잔인한 사형선고로 들렸습니다. 왜 하필 이런 비극이 우리에게 찾아온 것일까? 그저 남들처럼, 남들만큼,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 가족들에게 왜 하필 신은 이토록 감내하기 버거운 짐을 지워주신 걸까? 도무지 나약한 인간의 뜻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불행 앞에서 믿음은 또 한 번 냉소적으로 변모했고, 기어코 그 끝에 간절한 기도마저 내려놓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습니다. 아무리 성모님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치고, 목숨의 절반이라도 내놓겠다는 심정으로 성체 앞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울부짖어도 현실은 도통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적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한 순간 신실함은 벼랑 끝으로 곤두박질치고 그 자리에 미움이 피어올랐습니다.

그 날카로운 마음을 능숙하게 숨기기에는 당시 20대였던 저는 너무나도 젊고 미숙했기에, 신을 향한 이 날것의 원망을 존경하는 신부님에게 그대로 고백했습니다. 얄팍한 믿음에 대한 꾸지람이 날아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신부님은 생각지도 못한 묵직한 한마디를 던지셨습니다.

“가장 신이 저주스러운 순간이 우리가 가장 예수님의 십자가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랍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 예수님께서는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이는 성경 속 마르코 복음서에도 나와 있듯이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고 번역됩니다. 어렴풋이 본다면 인간의 육신으로 가장 고통받는 시점에서 우리의 구세주조차 신을 원망했다고 해석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극한의 괴로움 속에서도 끝까지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애쓰셨다는 이야기로도 풀이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생의 끝자락 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하느님을 놓지 않으셨고 그렇기에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었다는 말이겠죠. 돌이켜보면 신부님의 그 한마디는, 환난 가운데에서도 오롯이 버텨낼 수 있도록 하느님이 쥐여주신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저만의 십자가가 아니었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 어떤 세상의 위로로도 달래지지 않던 마음이, 믿음을 나누는 이의 언어로 이토록 격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분명 기적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현실은 계속되는 투병과 고난, 매일의 피로함으로 꽉 차 있습니다. 원망 역시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이 벼랑 끝에 설 때 스스로 되뇝니다. ‘이 고난 안에서 내가 절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뭘까? 반대로, 감사하고 기도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뭘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고통에 감히 비할 수는 없겠으나 생의 고통에는 분명히 하느님이 준비해두신 깨달음과 더 큰 지혜가 있으리라고, 이제는 믿으니까요.



박은선 베네딕타 /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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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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