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취재차 참여한 야외 미사에서 예고에 없던 폭우가 갑자기 쏟아졌다. 신자들은 고스란히 비를 맞고 머리와 옷이 홀딱 젖었다. 반면, 주교와 사제단 자리에는 천막이 씌워져 있어 큰비는 피할 수 있었고, 덕분에 영성체 예식도 문제없이 이어졌다.
미사 말미, 담당 사제는 하느님께서 이날을 잊지 말라고 특별한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하신 것 같다며 신자들을 다독였다. 다소 혼란은 있었지만, 신자들은 박수로 화답하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하지만 비에 홀딱 젖은 채 터벅터벅 걸어가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다른 천재지변이 아니라 그나마 비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전례 안에 교회 교리의 핵심이 담겨있고, 교회는 전례에 중심을 두고 움직인다. 신자들도 전례 안에서 신앙심을 키워나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례 안에서 상처받는 일이 이따금 일어난다.
20여 년 전, 주일학교 학생들이 거룩한 미사 시간에 떠든다고 교사들에게 미사 시간 내내 의자를 들고 서 있게 한 주임 신부가 떠오른다. 아주 오래전 일이고 거의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때 의자를 들었던 교리교사 중 일부는 상처를 받아 교사를 관두고 성당도 찾지 않았다.
신앙이 몇몇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것은 아니다. 주교와 신부도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례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봐야 한다며 신자들의 깊은 신앙심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에는 여유가 충분치 않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울고 웃는 나약한 하느님의 백성들이다.
그리스도는 나약한 제자들을 택하셨고, 교회도 낮은 곳으로 향하는 데 정체성이 있다고 한다.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만큼이나 나약한 신자들의 작은 목소리와 상황에도 귀를 기울인다면, 그분이 마련한 공동체 모습에 보다 가까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