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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난 하느님(박은선 베네딕타, 크리에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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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은 여전히 극복되지 않는 크고 작은 시련들로 점철돼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람은 풍파 속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을 때, 높으신 하느님을 만날 기회 또한 얻게 됨을 제게 주어진 시련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제 아버지의 불치병은 저에게 자유의지를 잃은 육신의 감옥을 향한 공포를 선사했지만, 그와 함께 병든 이들의 생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유대,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어느 순간 가난한 이들, 양육자로부터 버림받은 이들, 학대받는 이들마저 돌아보게 하였고, 그들을 돕는 일에 망설임 없이 발 벗고 나설 수 있게끔 이끌고 있습니다.

평온치 못한 삶은 그저 운명이며 ‘축복받은’ 나와는 상관없으리라 여겼던 무지몽매한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가끔 낯빛이 확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족의 아픔이 없었더라면, 급격히 기울어진 가세의 위기가 와 닿지 않았더라면, 그 안에서 느낀 슬픔과 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않았던 믿음의 끈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더 늦어졌거나 평생 불가능했을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그저 평온하기만 한 삶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고통이나 가난,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을 모르는 그저 충만하기만 한 삶을. 그곳에 존재하는 행복은 어쩌면 그림으로 그려낸 듯 아름다울지도 모릅니다. 회색빛 하나 없이 그저 쨍하고 사랑스러운 색감들이 조화를 기가 막히게 이룬 이상적인 곳이겠지요. 하지만 그곳에서도 지금처럼 하느님께 온전히 감사하며 오롯이 영광을 돌릴 수 있었을까요?

사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세상은 얼룩덜룩하기 그지없습니다. 만인에게 평등하게 부여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햇빛 한 줌조차 내 손에 쥐기 어려운 곳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마냥 회색빛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세상 모든 곳에 당신의 계획을 심어 두셨기 때문이지요.

낮은 곳에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도움의 손길이 있습니다. 공감과 이타심, 주님이 만드신 피조물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노력하는 이들의 사랑이 끊임없이 척박한 세상에 물을 주고 빛을 쬐어주며 숨 쉴 틈을 만들어냅니다. 선량한 마음의 결과를 주님 앞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또 다른 도움으로 피워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그들의 영혼 하나하나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의 모습을 좇으며 내 안에도 하느님을 모시며 그분의 참된 모습을 닮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저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그저 꿈처럼 아름답기만 한 세상은 더는 제 삶에 머물 수 없게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낮은 곳을 품게 된 지금의 삶이 훨씬 더 가치 있고 아름답다 느낍니다. 이곳을 알게 됨으로써 하느님을 더 찬미하게 됐고, 구세주의 참된 뜻을 추구하게 되었으니까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박은선 베네딕타 / 크리에이터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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