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상식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대한민국.’ 지난해 2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내놓은 정책공약집 제목이다. 공정과 상식은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수없이 언급했던 핵심 용어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지금 정부와 집권 여당이 ‘공정과 상식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여기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엠브레인퍼블릭ㆍ케이스탯리서치ㆍ코리아리서치ㆍ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기관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지난해 7월 이후 단 한 번도 40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반면에 같은 기간에 부정적 평가는 줄곧 50를 넘었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긍정적 또는 부정적 평가의 이유다. 올해 들어서 5월 2주 차까지 실시한 9차례의 조사에서 국정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로 ‘결단력이 있어서’라고 응답한 비율(최고 43, 최저 35)이 ‘공정하고 정의로워서’라고 응답한 비율(최고 24, 최저 19)보다 훨씬 높았다. 국정 운영을 좋게 평가한 이들은 국정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운영해서라기보다 결단력 있게 운영해서라고 본 것이다.
결단력은 분명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지녀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결단력은 독단적이고 일방적이기 쉽다. 실제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부정적 평가의 이유로 ‘독단적이고 일방적이어서’라는 응답은 최고 39, 최저 33로 역시 ‘공정하고 정의로워서’라는 응답보다 훨씬 높았다. 이같이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국정 운영은 ‘공정과 상식으로 새롭게 열어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집권 여당의 정책 방향과도 어긋날 뿐 아니라 특히 그 폐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식에서 우리나라가 국내적으로 “초 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 정치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 가장 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지적했다. 그런데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국정 운영이야말로 반지성주의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결과가 취임 1주년이 지난 지금 많은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나아가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는 일이 없도록 바로잡아야 할 책임도 있다. 하지만 작금의 형국을 보면 정부 여당이 오히려 이를 조장한다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정치의 본령(本領)은 공동선의 보장과 증진에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각 분야마다 다른 이익들을 정의의 요구와 조화시켜야 하는 각별한 의무가 있다. 집단의 특수한 이익과 개인의 특수한 이익을 올바로 조정하는 일이 사실상 공권력이 맡은 과제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이다.”(「간추린 사회 교리」 169항)
이 일이 힘들다고 해서 ‘법’을 빙자해 힘으로 몰아붙이기보다는 배려와 존중을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대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이것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해야 할 일이다. 이제 1년이 지났다. 남은 4년 동안이라도 독선과 일방이 아니라 참다운 공정과 상식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기를 충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