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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굳이 시작하면 누군가 돕는다 / 이향규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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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 젊은 여성 연구자들의 연구발표회가 있다며 시간 되면 오라고 했다. ‘굳이 거길 가야 하나?’ 망설였다. 갔다. 장소는 메리놀 외방 전교회 건물이었다.

한 발표자가 ‘기억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기억은 ‘자살’한다고 했다. 그날 복도에서 본 메리놀회 노(老) 신부님의 뒷모습이 떠올라서 토론시간에 발언했다. “기억은 자살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연사한다”고. “노인들의 삶과 경험은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니 젊은이들이 구술사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며칠 후에 소장 신부님이 전화를 했다. 나보고 메리놀회 함제도 신부님의 구술사를 맡아 달라고 했다. 제안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곧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굳이 내가 해야 하나?’ 의심이 들었지만, 하기로 했다. 곧 유능한 젊은 연구자 두 명이 합류했다. 그들의 수고로 프로젝트는 잘 끝났다.

구술 채록은 출판으로 이어졌다. ‘굳이 이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했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헌신을 믿었고, 같이 일하는 것이 이미 꽤 즐거워졌다. 「선교사의 여행: 남북한을 사랑한 함제도 신부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60년을 한국에서 산 미국인 선교사의 사랑과 모험, 실망과 좌절, 회한의 극복이 담겼다.

연구소는 이 책의 영문 출간을 희망했다. 내게 번역을 부탁했다. 이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요청하시니, 해보기로 했다. 남편이 도왔다. 그는 영국인이고 언어가 유려하다. 메리놀회가 한반도에서 선교를 시작한 지 100주년이 되는 5월 10일에, 번역본 「The Romance of the Mission」(선교의 로맨스)이 출간됐다. 슬프게도 메리놀회 한국지부는 그간 쓰던 건물에서 이사했다. 함 신부님은 그 상실에 마음 아파했는데, 이 책이 작은 위로가 됐다고 믿는다. 그분의 기억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나는 그동안 ‘굳이 내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했다. 다른 이가 하길 바라서, 나의 능력을 의심해서 망설였지만, 대부분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사람들이 함께했다. 그들은 일의 고달픔을 즐거움으로 바꿔 주었고, 서로의 부족을 메꿔 주었다. 그러니 마음으로는 옳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굳이 내가?’라는 생각이 들면, 일단 시작해 보시라. 그러면 필경 누군가는 도울 것이므로.
이향규 테오도라(뉴몰든 한글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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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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