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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무전여행 / 신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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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기타를 등에 업고 지방행 열차를 탄다. 기차 안의 풍경이 다양하다. 잔뜩 짐을 실은 사람들, 예쁜 강아지를 품에 안고 타는 사람, 사업차 전화를 하며 자신의 상품을 알리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소중한 목적을 가지고 기차에 오른다. 나도 매주 출소자들의 공동체로 향한다. 나를 반기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간다.

인생이란 여행과 같은 것.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내가 원하는 날에 죽는 것도 아니다. 그냥 태어난 것 같지만 살아보니 주님의 사랑과 부모형제, 친구들의 도움과 격려로 은총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살다가 힘이 들면 ‘참 운도없지!’ 하다가도 그것이 오히려 인생을 의미있는 행복으로 이끄는 날도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세월을 거슬러 오래전 떠났던 무전여행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 생애 스스로 떠났던 첫 여행은 고등학교 때다. 나를 포함해 성당친구들이었던 현구, 진호, 배근이, 석진과 함께 열차에 올랐다. 우리 중에 진짜 잘 사는 친구의 배짱을 믿고 시작한 여행이었다. 친구는 “다 필요 없어, 여행은 돈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야!”라고 호기롭게 말했고, 우리는 모란이 활짝 피어있는 강진으로 떠났다.

“상옥이 기타 치면서 하는 음악여행이니까 기타는 필수품으로 꼭 챙겨라”

친구들과 ‘고래사냥’, ‘나 어떡해’, ‘등대지기’ 등 당시에 유행했던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게임도 하고 즐거운 밤을 보낸 다음날. 우리 중 돈을 담당하던 친구가 누가 우리 돈을 훔쳐갔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전했다. “아이고! 전날 함께 놀던 그놈들일꺼야.” 여수에서 왔다던 또래의 친구들과 친해져서 함께 놀았는데 다음날 돈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집에 가기 위해 부모님께 연락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올라가는 차비만큼은 우리가 스스로 마련하자는 한 친구의 의견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렇게 타지에서 우리 다섯 명은 돈을 벌게 됐다. 별 소득 없이 이곳저곳 전전하던 우리는 기타 치며 노래를 해보기로 했다. 소개와 진행은 석진이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일은 현구가, 가짜 손님 역할은 덩치가 큰 진호와 배근이가 맡았다. 그렇게 시작된 거리공연은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모이더니 어느새 수십 명이 우리 앞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앙코르를 외치는 사람 뿐 아니라 앞에 있던 식당 주인은 노래를 잘 한다며 ‘그리운 금강산’을 신청하기도 했다. 노래가 마음에 드셨는지 식당 주인은 우리에게 하루 잘 곳을 제공해 주셨고 다음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42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만나면 거의 끝자리에 항상 이 영웅담을 이야기하곤 한다. 아쉽게도 최근 몇 년 간에 그 친구들 중 2명이 벌써 이 좋은 세상을 떠나 주님의 나라로 갔다.

‘돈만 있으면 모두 오케이!’라고 외쳤던 친구들과 그 시절이 그립다.

오늘도 숨 크게 쉬고 성호를 그으며 잘 나갈 때가 위험할 때고, 또 시련이 닥칠 때가 은총의 시기임을 깨닫는다. 지난날 무수히 지나간 또 다른 뜻밖의 무전여행이, 앞으로도 다가올 무전여행도 행복임을 감사하며 하늘을 보며 미소지어본다.
신상옥 안드레아(생활성가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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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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