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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LA공항의 추억 / 신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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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미국에 갔을 때 일이다. LA공항에 내려 입국심사를 하게 된 상황. 동행한 사람들은 모두 통과됐는데 나는 입국을 거절당하고 대기실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나를 심사한 미국인이 “왜 여기 탑승했냐?”고 묻는다. 벌써 3번이나 비자가 거절됐기 때문에 미국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작은 예수회(지체장애인들과 함께하는 고(故) 박성구 요셉 신부님의 공동체) 찬미 봉사자로 활동했다. 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지내던 중 작은 예수회 미국지부에 가서 그곳 장애인들과 노숙자들을 위한 콘서트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던 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90년대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세 번 이상 미국 비자를 거절당한 기록이 있었고 드디어 2010년 한미무역협정이 잘 해결되자 전자여권비자가 통과돼 미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에 입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떠났으나 입국길이 막힌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전자여권비자가 통과되더라도 그전에 거절당한 이력이 있는 사람은 미국대사관에 가서 따로 허락을 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영문을 모른채 들어갈 수 있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시간이 흐른 뒤, 미국 심사관이 와서 미국에 온 이유를 물었다. 미국에서 10년에 걸쳐 가난한 장애인을 돕고 있는 작은 예수회 본부장님이 오셔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셨다.

“저기 있는 통기타는 왜 가지고 왔냐?” 내 옆에 놓인 기타의 용도가 궁금한 지 이유를 묻는 심사관. “제가 노래를 좀 할 줄 알아서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함께하기 위해 가져왔습니다.”

내 말을 들은 심사관의 눈이 커지면서 눈빛이 밝아진다. “진짜요? 그럼 한번 노래해봐요.” 그렇게 LA공항에서 갑자기 시작된 작은 콘서트.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때)

Mother Mary comes to me(어머니 Mary(매리)는 나에게 다가와)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지혜의 말을 해주시죠, 그냥 내버려 두라고)

미국인들도 좋아하고 내가 가장 자신있는 팝송인 ‘Let it be’를 부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공연이었지만 반응이 의외로 뜨거웠고, 그렇게 무사히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원래 비자를 한 번 거절당하면 승인받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작은 예수회가 미국의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했기에 통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후로 나는 미국에 무사히 몇 번 더 다녀올 수 있었고 찬미로도, 여행으로도 미국에서 은총의 시간을 보냈다. 하느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입국 통과 이유가 나의 노래나 콘서트보다, 오히려 내가 조금 도와줬던 분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이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그런 거 같다. 내가 모든 것을 계산해서 나가지만, 하느님의 성심 안에 내가 머무를 때 내가 마음속 깊은 것을 원했던 것들도 이뤄진다는 것을 안다.

먼 훗날 내가 죽어 천국 입국 심사 때 무엇으로 통과될까? 참으로 진실하고 헌신하고 뉘우치는 삶은 어렵지만 그 삶을 받아들이고 이웃과 나누고, 주님의 마음이 원하는 곳에 내가 머물거나 그곳으로 떠날 수 있도록, 오늘 또 새롭게 태어나게 해달라고 주님께 청해본다. 몇 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박성구 신부님을 사랑으로 기억하며 본부장님과 LA공항의 추억을 전화로 이야기 나눈다.
신상옥 안드레아(생활성가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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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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