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의 시로 말라바르·말란카라 공존... 분열된 교회의 갈등 청산, 지도자의 일치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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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신부와 수녀들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분열을 멈추라고 호소했다. 신부와 수녀들로 구성된 ‘정의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포럼’은 최근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에게 전달한 공개서한에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에게 가해지는 박해에 저항하려면 먼저 지도자들이 하나가 돼야 한다”며 일치를 촉구했다.
서한에서 언급한 교회 지도자에는 동방 가톨릭에 속하는 시로 말라바르 교회와 시로 말란카라 교회 대표들도 포함된다. 이들 교회는 라틴 전례를 따르는 로마 가톨릭과 차별되는 고유한 전례를 갖고 있지만, 로마 사도좌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가톨릭이다.
하지만 세 교회, 특히 시로 말라바르 교회와 시로 말란카라 교회는 전례 해석과 사목구, 사회참여 활동 등을 둘러싸고 자주 갈등을 빚었다. 이 때문에 지도자 간의 대화와 협력이 원활하지 않다. 최근에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지지하는 시로 말라바르 교회 지도자가 영국 언론 인터뷰에서 “모디 정권하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안전하다”고 발언해 신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 성향의 인도국민당(BJP)을 앞세워 소수 부족(종교)을 차별, 박해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서한은 지난달 북동부 마니푸르주에서 발생한 부족 간 유혈 충돌로 수 백 명의 사상자가 나온 것과 관련이 있다. 인도 정부는 대외적으로 부족 간 충돌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충돌 이면에는 힌두인과 그리스도인 간의 해묵은 반목이 있다.
유혈 충돌은 주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 부족(메이테이족)의 특혜를 인정한 법원 판결에 그리스도인 부족(쿠기족)이 항의하면서 발생했다. 소수파인 그리스도인들의 평화 시위에 다수파 힌두인들이 폭력적 방법으로 대응해 빚어진 참사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망자는 최소 60명, 부상자는 300명 이상이다. 또 교회 건물 100여 채가 불길에 휩싸였다. 힌두 민족주의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다.
신부와 수녀들은 서한에서 “제도권 교회가 날로 증가하는 폭력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치해서 저항해도 모자랄 판에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심지어 전례가 다른 형제자매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기까지 한 지도자들을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신부와 수녀들은 “오늘날의 위기 속에서 이중적이고, 심지어 모순되는 발언을 하는 지도자들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분열된 교회로는 강력한 적대 세력에 대항할 수 없다”며 “지도자들은 대화를 통해 교회 내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조처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시로 말라바르 교회와 시로 말란카라 교회
인도에는 한국 교회처럼 라틴 전례를 따르는 로마 가톨릭뿐만 아니라 시로 말라바르 교회(Syro-Malabar)와 시로 말란카라 교회(Syro-Malankara)가 있다. ‘시로’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시리아 동방 전례에 속하는 교회다. 두 동방 전례 교회는 서기 52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토마스 사도가 인도의 최남단 케랄라에 도착해 복음을 전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16세기 초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케랄라에 상륙한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 문화에 동화된 1500년 역사의 시로 말라바르 교회를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인도 가톨릭은 로마 가톨릭 신자들(약 1300만 명)이 다수를 이룬다. 시로 말라바르 교회 신자는 약 350만 명이다. 시로 말란카라 교회 신자 수는 그보다 더 적다. 세 교회는 교황청에 직속돼 있지만 각기 독립된 주교회의와 자치권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