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고 6월 6일은 현충일이다. 영국에도 한국의 현충일 비슷한 날이 있다. 11월 11일이다. 1918년 11월 11일을 기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을 기념한다. 영국에서는 ‘추모의 날’(Remembrance Day)이라고 부른다. ‘추모’라고 옮긴 영어는 기억하다(Remember)의 명사형이다. ‘기억하기’ 혹은 ‘기억하는 행위’라는 의미이다. 나는 ‘추모의 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엇을 추모하는지를 제시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우리는 호국영령의 충성과 헌신, 희생을 기억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데, 영국의 ‘추모의 날’에는 목적어가 빠진 것 같았다.
지난해에, 영국인들이 무엇을 기억하는지, 그 ‘목적어’를 비로소 알게 됐다. 11월 11일 후 첫 번째 일요일을 ‘추모의 일요일’이라고 부른다. 이날은 모든 교회에서 추모예배를 드리고, 지역 주민들은 마을마다 있는 추모비에 헌화한다. 나는 내가 일했던 런던한겨레학교 어린이들, 학부모들과 함께 이 헌화식에 참가했다. 의례는 영국 국교회 신부님이 집전했고 의례 중에 ‘추모의 기도’를 바쳤다. 신부님이 기억해야 할 사람을 호명할 때마다 참석자 모두 “우리는 그들을 기억합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전쟁 희생자들을 기억합니다.
전쟁으로 죽거나 고통받은 이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합니다.
전쟁의 살상을 거부해서 처형되거나 박해받은 이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
전쟁 난민과 집을 잃은 이들
전쟁으로 부상 입은 이들
전쟁으로 인한 재해나 가난으로 고통받은 이들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견디는 이들
사랑의 하느님, 저희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자주 과거의 교훈을 망각함을 용서해 주세요. 오늘 저희가 듣고 나누는 모든 행위를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시고, 그리하여 우리가 진심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우리는 그들을 기억합니다.” 아멘.
용감하게 싸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싸움을 거부했던 사람들까지 기억하는 것이 놀라웠고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은 이들의 상처를 구체적으로 어루만지는 데 눈물이 났다. 이날 행사에 참여해서 함께 기도했던 학부모들은 모두 북한 사람들이었다. 이날 나는, 언젠가 정전 상태에 있는 6·25전쟁도 마침내 끝나서, 남북이 함께 이런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했다.
이향규 테오도라(뉴몰든 한글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