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입니다. 가만히 한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표정과 눈빛을 골고루 살피는 사람입니다. 살짝 스치는 작은 떨림 같은 면면들까지 두루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그가 가지고 있는 환희와 절망, 소망과 좌절 같은 삶의 굴곡들이 너른 뭉게구름처럼 펼쳐집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그 무엇까지 고스란히 내 안에 스며듭니다. 한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그렇게 하나의 우주를 가슴으로 느끼는 순간입니다. 얼굴이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억 하나를 숨죽이며 떠올립니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 서울시 서초동 소재 삼풍백화점이 붕괴됐습니다. 엉성한 설계에 따른 부실공사로 사망 502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라는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어이없는 사고였습니다. 아수라장 그 자체인 참사 현장은 갓 수습 딱지를 뗀 초보 사진기자가 감내하기에는 불가능했습니다. 절로 두손을 모아 하느님을 찾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사람, 사람들의 얼굴이었습니다. 붕괴된 건물 콘크리트에 깔린 채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 사람을 살리고자 목숨을 건 구조대원들,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연자실 서 있는 시민들. 각자 다르게 보이던 그들의 얼굴과 표정은 참사 후 30여 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선연하게 분리된 채로 남아있습니다.
귀하지 않은 생명이란 어디에도 없음을 지금도 절감합니다. 언론사를 그만두고 사진을 매개로 하는 심리상담가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의 나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지닌 생명성에 더욱 주목하고 있습니다. 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고문 피해자, 70·80년대 조작간첩사건 고문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 미혼모, 성매매여성, 북향민, 발달장애인. 명사화된, 부르기 꺼끌스럽게도 어느 특정한 사건의 ‘피해자’로 호명·인식된 이들의 곁이었습니다.
특히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치유자로서의 내 자리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인지한 사건이었습니다. 안산의 한 치유센터를 오가며 자식을, 그리고 형제자매를 잃은 유가족들을 만나며 많은 시간들을 함께했습니다. 더불어 이 모든 만남의 시간들은 당사자들과 함께 심리적 내상에서 벗어나 치유와 회복의 여정을 함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껏 만나온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존칭을 붙여 자주 불러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이름을 통해 그 존재를 인정받고 스스로 인정합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를 존중하는 것이고, 그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를 증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름을 알고자 하는 행위 자체가 그 누군가의 존재를 공감하고 존중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연을 맺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이름을 묻게 됩니다.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하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존중과 이해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을 때 가만히 두 손을 모아 하느님에게 속삭이게 됩니다. 내 앞에 마주한 이를 당신처럼 여기고 그 귀한 삶을 바라보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내일 다시 만날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두 손을 모아봅니다.
임종진 스테파노(사진치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