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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빈 평화칼럼] 형제님! 자매님!

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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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홍보 주일을 맞아 강릉 초당성당에 선교홍보활동을 다녀왔다. 미사 전에 성당의 훼손이 우려될 정도로 많은 아이가 공놀이하며 왁자지껄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데 중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한 학생이 어른에게 다가가 “형제님! 공 좀 주세요”라고 말한다. 아무리 봐도 그분을 ‘형제님!’이라고 부르는 건 좀 어색해 보였다. 그런데 신자들은 누구든 서로를 부를 때 ‘형제님! 자매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구역장님, 회장님, 반장님, 언니, 형님 등의 호칭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호칭을 전직이든 현직이든 직책과 직업 등으로 하면 세대 간 경계가 생기고 벽이 세워집니다. 소통의 장벽이 되는 거죠. 모두 형제님, 자매님으로 불러야 합니다.” 호칭 통일을 제안한 주임 신부의 설명이다. 과연 호칭 하나 바꾼다고 공동체가 바뀌고 신앙이 쇄신될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신자들의 미사와 선교 활동을 보면서 이게 바로 시노달리타스를 구현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이 성당에 잘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래가 없어서일까? 호칭 문제가 걸림돌이 돼서일까? 지난해 본당에 부임한 보좌 신부에게 질문했다. “성당에 오는 청소년들은 어른들처럼 직함으로 호칭하며 서로를 부르는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어서 호칭에 익숙하지도 않고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2년째 경청과 식별의 시노달리타스 과정을 보내고 있다. 하느님 백성 모두가 주인공으로 참여해 상호 경청과 친교를 통해 주님의 길을 함께 가자는 것이다. 각자가 아닌 ‘우리’가 돼 ‘하나’가 되자는 의미이다. 그런데 지금 교회 구성원은 서로를 배려하며 진심 어린 소통을 하고 있을까?

직책과 직함이 없는 형제자매의 이야기는 경청에서 배제되고, 회장과 구역장의 한 말씀만 반영되는 것은 아닐까? 계급적인 호칭을 사용하면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유교적, 봉건적 전통이 강해 서구의 보편 교회와는 달리 ‘호칭’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동반경을 좁히는 측면이 있다. 하나의 신앙 안에서 ‘호칭’에 계급적 요소를 없애는 것은 초기 한국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의미도 있다.

조선 말,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순교하면서도 천주교를 지킨 것은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가르침 때문이었다. 천주교의 평등관과 내세관은 당시, 양반과 평민, 천민으로 나뉜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멸시를 받던 하층민에겐 천지개벽할 유일한 희망이었다.

성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다룬 영화 ‘탄생’에서 마부인 성 조신철 가롤로는 이렇게 말한다. “저기 정하상 형제가 어떤 사람이냐? 조선 최고의 유학자 가문 출신, 양반 중의 양반 아니냐? 난 천민 출신 마부. 내가 감히 얼굴도 쳐다볼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말도 트고 밥도 같이 먹고…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지다. 천주님이 우리 인간을 똑같이 귀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또 천민(백정)으로 복자품에 오른 황일광 시몬은 평소 교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성경에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갈라 3,28).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열린 형제애’를 통한 ‘듣는 교회’를 강조한다. 듣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평등할 때 들을 수 있다. 계층이 생기면 잘 듣지도 진솔한 이야기도 나누기 어렵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나눔과 비움, 섬김을 통해 흔들리는 영혼을 바로 세우는 게 신앙 공동체라면 이를 제약하는 본당 내 권위적이고 계층적인 호칭 사용을 자제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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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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