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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평범하고 따뜻한 일상의 추억(김태훈 제랄도, (사)우리들의 성장이야기 대표 ‘총각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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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처음은 설레고 각별합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특별한 의미처럼 제게도 아주 특별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사춘기가 다된 나이에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고,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보았고, 처음으로 생일상을 받아본 아이들입니다. OECD 주요 20개국에 속한 경제 강국 대한민국에 ‘설마, 그런 아이들이 어디 있어?’라고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겠지만, 저와 함께 사는 북한이탈 청소년들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20년째 북한이탈 청소년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총각엄마’ 김태훈(제랄도)이라고 합니다. 서울 성북구 정릉에서 북한이탈 청소년 10명과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며 엄마 아빠의 역할을 하다 보니 제 이름 앞에 ‘총각엄마’라는 수식어도 자연스럽게 붙게 되었습니다.

아침 6시, 식구가 많은 저희 집은 고등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등교 시간에 맞춰 깨워 아침을 먹이고 학교 보내는 일이 다른 집과 달리 더 북적입니다. 촌각을 다투듯 저는 주방에서 밥을 준비하지만, 제 귀는 온통 화장실에서 아이들이 씻고 나오는 소리에 집중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명이 나오면 바로 다음 아이가 들어가야 모두 늦지 않게 학교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는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침대에서 제가 깨워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순서대로 일어나 씻고, 밥을 잘 먹고 가면 정말 좋겠는데 가끔 입 짧은 한 명이 밥을 안 먹겠다고 하면 괜히 신경이 쓰입니다. 뭐라도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잔소리+설득+강요’로 조금이라도 먹여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보내고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오는 적막함이 가끔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시간만큼은 세상 모든 간섭을 받지 않고 즐기며 살아가는 저는 ‘총각엄마’입니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지, 금세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들어오자마자 벗어놓은 옷가지들과 수건들은 오전에 돌린 세탁기가 무색할 만큼 다시 산더미처럼 쌓입니다. 저만큼이나 일복이 많은 세탁기를 다시 돌립니다. 저녁을 먹고 정리가 끝나면, 다시 내일 아침 먹을 준비를 해놓고 아이들과 거실에 누워 TV를 시청합니다. 저는 이때가 제일 행복한 시간입니다. 제 다리와 배를 베고 누워 제 팔과 배를 조몰락거리는 아이들이 저는 고맙게 느껴집니다. 말이 아닌 스킨십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감정상태가 제게 그대로 전달이 되는 것 같아서, 아이들이 저를 마음으로 받아준 것 같아서요.

아이들과 같이 밥 먹고, 누워 TV를 보며 보내는 이 시간은 우리가 가족임을 느끼게 해주는 귀한 시간입니다. 저의 유년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집안을 가득 메운 맛있는 음식 냄새와 함께 웃으며 반겨주는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이 제 머릿속에 가득 차 있고, 이러한 기억들이 지치거나 힘들 때 저를 일으켜주는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지극히 평범하고 따뜻한 일상의 추억을 채워주고 싶습니다. 부모의 빈자리를 제가 감히 채워 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결핍은 느끼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한 추억과 감정들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아마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참 좋아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우리들의성장이야기 대표 ‘총각엄마’ 김태훈(제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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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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