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이창훈 평화칼럼] 400년 전 성인에게 배우는 이 시대 영성 생활

이창훈 알폰소(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영성 생활 혹은 신심 생활과 관련하여 오래전부터 오르내리는 얘기가 있다. 관상, 곧 기도가 먼저냐 아니면 활동이 먼저냐 하는 것이다. 관상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마르타와 마리아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근거로 든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2) 반면에 활동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야고 2,17)이라는 야고보서 2장의 말씀을 근거로 든다.

전통적으로는 활동보다 관상 곧 기도가 먼저라는 주장이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는 활동 수도회보다 관상 수도회가, 또 평신도의 삶보다는 수도자와 성직자의 삶이 낫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생활 신분이나 처지에서든, 하느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성덕’에 이르도록 ‘저마다 자기 길’에서 주님께 부르심을 받는다.”(「교회헌장」 11항) (작은따옴표는 필자의 강조)

공의회의 이런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평신도가 사제나 수도자의 삶을 평신도의 삶보다 우위에 두는 것 같다. 오롯이 기도하는 시간을 내고 싶어도 세속사의 온갖 걱정과 염려 속에 살아가는 평신도가 수도자나 사제의 삶을 동경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평신도들은 기도와 일, 관상과 활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영성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

400년 전 선종한 안시의 주교 성 프란치스코 드 살(1567~1622)은 이에 대해 아주 탁월한 처방을 제시한다. 성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관상 그 자체는 행동 또는 행동하는 삶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행동하는 삶 안에서 (하느님과) 더욱 깊은 일치를 찾는다면 그것이 더 낫습니다.” 관상과 활동을 분리하지 말고 활동 자체를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하느님과 일치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성인의 이 말은 미국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1929~1968) 목사가 한 말과 맥을 같이 한다. 일에 혼을 담아서 하라는 것이다. “당신의 운명이 거리 청소원이라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이 거리를 청소하십시오.… 셰익스피어가 시를 쓰듯이 거리를 청소하십시오. 하늘과 땅의 무수한 이들이 멈추고는 ‘여기 자기 일을 잘해낸 위대한 거리 청소원이 살았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거리를 청소하십시오.”(1967년 새 계약의 침례교회 연설 중)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은 나아가 그릇된 신심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단식에 열중하는 어떤 이는…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신실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는… 술 한 방울 또는 물조차 자기 혀를 적시게 두지 않으려는 반면, 험담과 비방으로… 혀를 흠뻑 적시게 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또 다른 이는… 자신의 혀가 퍼붓는 악하고 교만하며 상처 주는 말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도 온종일 기도문을 암송하기 때문에 자신이 신실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기꺼이 지갑을 열어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지만, 그 마음에서는 자기 원수를 용서하려는 온유함을 손톱만큼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이 모든 훌륭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신실하다고 여겨지지만 대부분 분명히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2월 28일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의 선종 400주년을 기념해 교황 교서 「모든 것이 사랑에 속합니다」를 발표했다. 우리 말로 번역된 이 교서 전문이 지난 6월 14일 주교회의 홈페이지에 게시됐다. 10쪽 남짓한 분량이지만 이 시대의 영성 생활을 위한 자양분 넘치는 문헌이다. 모든 신자가 꼭 한 번 정독해 보시길 권한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6-2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1. 27

시편 48장 11절
하느님, 주님 이름처럼,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