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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킬러문항과 교육(박상훈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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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미국에서 대규모 대학입학 부정사건이 터졌다. 유명한 부유층 부모들이 아이들을 엘리트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거액을 들여 온갖 과외활동으로 입학지원서를 쓰고 시험성적을 조작하거나 입학사정관을 매수했다. 이 사건을 두고, 부모의 배경이 아니라 학생 자신의 재능과 노력, 의지를 구현하는 ‘능력주의’를 교육이 스스로 배반했다며 비난이 엄청났다. 그런데 왜 미국의 부자 부모들은 주식을 물려주지 않고 대학 입학자격을 물려주려고 했을까?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원제는 「능력이라는 폭군」)에서 이 부모들이 돈처럼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그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여기는 어떤 것을 구매하고 있다고 봤다. 언뜻 공정하게 보이는 ‘능력’이라는 가치이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특권층은 성공과 성취가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통해 스스로 얻은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성취가 타인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는 능력주의의 ‘신화’가 필요하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표준화된 시험의 결과는 부모의 소득과 재산에 비례한다. 높은 성적은 경쟁 뒤에 숨겨진 특혜를 오로지 내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라 착각하게 한다. 능력주의 원칙이 실행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 자체가 정당한 자격이나 기회균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얼마 전, 대통령이 ‘킬러문항’을 수능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한 것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을 지상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로 만드는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런 말을 했을 리 없다. 그랬다면 제도 변화가 주는 막대한 영향력을 무척 세심하게 살폈을 것이다. 정책은 숙고이자 합의이지 명령이나 고함이 아니다. 대통령은 누구보다 자신이 결정적으로 큰 이득을 본 능력주의의 막강한 위력을 잠시 잊은 것 같다.

한국의 특권층 부모들에게 교육과 집(땅)은 살아계신 ‘하느님들’이다. 그러니 문제는 시험제도의 효용이나 공정함이 아니라, 훨씬 더 깊은 심연에 있다. 인생의 성취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능력에 대해서도 의심해봐야 한다. 성공과 능력에 대한 헛된 이념을 그대로 두고서는, 시험제도 바꾼다고 사교육과 대학 서열화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왜 교육을 받는가? 교육에는 다른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선(善)인 ‘본래적인 가치’가 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지식, 기술, 태도, 성향을 연마해서 인간복리와 행복에 이르는 것이다. 교육의 힘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변화시키며, 타인의 복리에도 기여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이 과정은 무척 역동적이어서 학교뿐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 전체가 교육과 연루되어 있다. 교육의 모습이 바로 사회의 모습이다. 교육을 본래적인 면모가 아니라, 지위를 결정하는 도구로 보기 시작하면 사회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차피 소수만이 승자가 되고, 나머지 전체를 패자로 만드는 환경에서는 결국 모든 이가 불행한 사회가 된다. 이런 실패를 그만큼 겪었으면, 이제 뒤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이런 당부를 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일에 생동하시며 함께 하시는 장소가 바로 교육 현장입니다. 이곳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기쁨을 발견합니다. ‘나’에서 ‘우리’로 움직이며, 하느님의 백성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가톨릭 교육자들과의 만남’, 2008년 4월 17일) 나의 재능을 내 것이라 애써 우기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물림하려는 사람, 그리고 이것은 특권이며 다른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일까. 불행과 행복 사이만큼.



박상훈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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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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