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여 년 전 프랑스 시골 마을 리지외에 데레사라는 젊은 수녀가 살았다. 빵 굽고 빨래하고 책 읽고 기도하는 미소한 일상과 기억을 그녀는 기록으로 남겼다. 스물넷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후 수녀원 담장 너머로 공개된 그녀의 글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특유의 ‘작은 아이의 영성’은 현대 가톨릭 신앙에 깊이 각인된다. 그가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이다.
20대 후반의 늦봄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을 선물 받았다. 선물해주신 분이 꼭 읽어보라며, 글에 묘사된 데레사의 모습이 나와 닮았다고 하셨다. “신부님, 전 이마가 이렇게 동그랗거나 예쁘지 않은데요?” 책에 수록된 흑백사진을 들여다보며 갸우뚱했더니 빙긋 웃으며 “내면의 얼굴이요”라 답하셨다. 애착이 많되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던 어린 데레사가 어떻게 어둠에 감춰진 자신의 반짝임을 발견하여 영성의 다음 단계로 나아갔는지 들려주셨다. “데레사처럼 용기 내어 한 발 더 내디디면 소영 자매도 그와 닮은 사랑의 얼굴로 하느님을 만날 거예요.” 그 무렵이었다. 읽고 쓰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 외엔 등장하지 않던 ‘내일을 그린 그림’에 다른 무언가 더해졌던 것이.
이듬해 겨울밤 선배 언니와 식사하던 자리에서였다. 어떤 이야기 도중 ‘소영씨는 실제론 건조한 사람’이란 말을 들었다. 소녀 같고 감상적인 듯하면서도 내면은 바싹 말라 있다고. 난 수프를 뜨다 말고 표정이 굳었다. 서운한 감정이 뭉게뭉게 솟았다. 혹시 며칠 전 내가 실수한 일로 복수하시나 옹졸한 생각마저 들었다. 원래 그 일을 사과드릴 겸 맛난 저녁을 사고자 만난 것이었으나 각자 계산한 후 커피도 안 마신 채 헤어졌다. 책상 앞으로 돌아와 논문집을 열었더니 글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메마른 사람”, “소녀 같지만 건조해요”라고 외치는 듯했다. 탁 덮고 침대 머리맡의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을 집었다. 읽고 또 읽어 모서리가 닳은 그 책을 습관적으로 펼쳐 든 순간 내면에 소용돌이가 일었다. 저 깊숙한 곳에서 아이가 ‘내 탓 아냐’ 하며 울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랬다. 그 책을 읽을 때 일던 온유한 감정의 말미엔 항상 은밀한 박탈감이 묻어나곤 했다. 난 데레사처럼 티 없이 순정한 영혼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자라온 환경에서 그녀가 받았던 사랑과 공기처럼 자연스러웠을 어떤 경험들이 내겐 없었다. 이는 ‘되고 싶은 나’를 지향하는 본래의 나로선 어찌 못할, 노력으로 채울 수 없을 부재였다. 마음 아팠던 이유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선배는 복수하려고 그리 말씀하신 게 아니었다. 깊은 애정을 갖고 계셔서 세심히 감지하실 수 있었던 거다. 과거에 책 선물하셨던 분은 내가 성장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길 바랐을 테지만, 난 문장 표면에 드러난 화창함을 흉내냈을 뿐임을 자각했다.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맞지 않는 신발을 구겨 신으면 발이 부르트고 곧잘 넘어진다. 하지만 오래 신어 닳고 바래면 한순간 편해지기도 한다. 구두와 발이 서로 닮아가는 것이다. 내 안엔 사랑이 없다. 억지로 사랑의 신발에 밀어 넣은 마음은 부르트고 물집이 잡힌다. 신데렐라의 언니처럼 난 마음을 베어 잘라서 유리구두에 밀어 넣고 싶었다. 절룩이며 이 구두 신겠다고, 나도 여기 꼭 들어맞고 싶었다고 고집부리면서. 갈망이 닳고 바래는 시점에 이르면 지금은 내 것이 아닌 이 화창함도 너덜너덜 편해질 수 있을까.”
십수 년 동안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언제부턴가 조금 편해진 기분도 든다. 헤지고 구겨진 대로 구두와 마음이 서로 닮아가는 중일까. 시간이 많이 흘러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을 무렵엔 ‘소화 데레사가 장수했더라면 저런 할머니였을 거야’에 가까워져 있도록, 이 신을 신고 난 계속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