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기획 취재차 순례길을 걸었다. 한국 교회 첫 순교자 윤지충 복자와 첫 사제 성 김대건 신부의 길이다.
두 길 모두 울창한 숲 속에 자리한 산길이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도 없었고 들리는 소리라곤 새소리, 벌레 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소리, 내 발자국 소리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였다. 길을 걷다 잠시 멈춰 고요 속에 머물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길은 신앙 선조들의 피와 땀, 박해와 죽음이 도사렸던 길이다. 지자체와 함께 조성했기에 군데군데 표지판이 설치돼 있어 의미가 계속 상기됐다.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순교한 윤지충 복자, 마지막 순간 “천국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성 김대건 신부. 단순한 신앙이다. 이들은 교회 가르침에 충실했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죽음으로 그 신앙과 지조를 지켜냈다. 우리는 그들이 닦아놓은 길을 그저 순례라는 이름으로 걸어갈 뿐이다.
따라만 가면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험난한 시기 그 단순했던 신앙은 오늘날 세상 자유로워진 분위기 속에서 더 복잡해진 듯하다. 식당에서 성호경을 긋는 일조차 쭈뼛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눈치가 중요한 세상이고 경쟁이 난무한 시대다. 무엇보다 논리와 식별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을까.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단순한 신앙이 요구되는 지금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하느님 앞에 평등을 얘기한 신앙 선조들의 단순함은 오히려 시대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도 여러 문제들이 펼쳐져 있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사람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단순한 신앙이 필요한 시점이다. 광활한 순례길에서 느꼈던 평화가 부디 후대에도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