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형제 폐지’ 빼고 유엔 인권이사회 권고 수용
[앵커] 지난 1월 유엔 회원국들이 제4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에서 우리 정부에 총 263개의 인권 개선과제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53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164개의 권고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부가 수용하지 않은 권고 사항에는 사형제 폐지가 포함돼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는데요.
사형제 폐지,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김현정 기자가 짚어드립니다.
[기자] 국제엠네스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사형폐지국은 121개국입니다.
사형제를 폐지하는 국가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만에도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6개 나라가 사형제를 폐지했습니다.
사형제 폐지는 국제적인 추세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정부와 사법체계는 이러한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기회 있을 때마다 정부에 사형제 폐지를 권고해 왔고 사형제 위헌소원 사건에서 폐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다수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교체를 앞두고 있어, 빠른 시일 내 헌재 결정이 나오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에서도 지난 1999년 15대 국회에서부터 ‘사형폐지 특별법안’이 꾸준히 발의됐으나, 법사위 소위에서 심도 깊은 논의 한번 못해보고 폐기됐습니다.
지난 30년 간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민 여론은 꾸준히 증가해왔지만, 흉악범죄가 불거질 때마다 여론은 선회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법감정과 범죄예방 가능성이 사형제 찬성과 합헌론의 논거가 됐습니다.
하지만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형벌이 범죄예방 효과가 있다는 실증적인 증명은 없습니다.
실제로 사형수 23명에 대한 사형집행이 이뤄진 1997년 이듬해는 살인사건이 전년도보다 177건이 증가한 966건 발행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또 이성이 아닌 국민의 법감정이 법이 되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사형제도는 오판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고, 선진사법체계에서 어울리는 형벌제도가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김선택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아무리 흉악무도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마지막 1인의 최후의 국민까지도 국가가 어떻게든지 교화해 보겠다’하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그게 문명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동안 ‘사법살인’을 막기 위해 도입된 헌법 제110조 제4항의 단서 조항에 대한 잘못된 이해도 사형제가 폐지되지 못한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납니다.
<김선택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긴급상황을 이유로 예외적으로 이게 가능하게 해 놓은 거예요. 첫 번째는 비상계엄이 발동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고 둘째는 군사재판이라는 예외 법원에 의한 재판이 있고, 그렇죠? 세 번째는 3심제가 아닌 단심제만 적용된다는 세 개의 예외가 딱 결합돼 있어요. 이 사형의 오남용 가능성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 이런 입법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거죠.”
언제든 실수 할 수 있는 국가가 형벌이라는 이름하에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제도의 폐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닙니다.
<현대일 신부 / 주교회의 사형제폐지소위원회 위원>
“침해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잘 지키도록 보루를 쌓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죠. 국회의원, 헌법재판소 모든 것을 정치적인 논리로 이렇게 살펴보면서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CPBC 김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