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일명 ‘유령 영아’의 사망 소식이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경찰이 최근 낙태된 태아의 시신을 전문적으로 대행 처리해주는 업체를 적발해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업체와 거래한 병원은 전국에 50곳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9년 헌법불합치 판정으로 낙태죄 처벌 조항이 효력을 잃은 이후 뱃속에서 살해된 태아의 사체까지 유통하는 사태마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심각한 반생명 행위가 우리 사회 음지에서 고삐 풀린 듯 퍼지고 있는 형국이다.
충남경찰청은 지난 6월 29일 “진료 기록을 조작해 공·민영 보험금을 타낸 의사 등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낙태한 태아의 시신을 의료폐기물로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진료 기록을 조작해 관련 업체에 넘긴 혐의를 확인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보험사기 수사 중 추모공원으로 향하는 수상한 승합차를 발견해 긴급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차량 내부에 있던 냉동고에서 태아 시신 2구를 발견했다. 승합차를 몰던 업체 관계자는 “15~20구 정도의 시신을 보관할 수 있고, 크기가 작을 경우 30구까지도 가능하다”고 했다.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임신 4개월(16주) 이후 태아가 사산하면 사람으로 보고 매장하거나 화장해야 한다. 그 이전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지 않아 의료계에서는 의료폐기물로 간주해 폐기물관리법에 의해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낙태로 발생한 태아의 시신은 처리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에 경찰은 의사들이 사산됐을 경우에만 화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노려 허위로 사산 증명서를 작성해 업체에 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생명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반생명적인 세태를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사회 전체가 관심을 기울이고 방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 박은호 신부는 “낙태죄 폐지를 시작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문화와 이같은 끔찍한 상황들이 계속 확산하고 있다”며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해 한국 교회 전체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며, 특히 태아의 고통과 아이를 낳아 기르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부모들의 상황에 더욱 동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박정우 신부는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 태아 또한 참 생명이며, 인간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의 소중함을 존중받아야 한다”며 “하느님에 대한 의식 없이 물질만을 추구하는 쾌락 중심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반생명적인 행위는 모두 ‘죽음의 문화’에 포함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낙태죄와 출생통보제, 보호출산제 도입은 태아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자 과제”라고 했다.
교회는 생명의 가치를 우선에 두는 교회 가르침에 따라 낙태죄 도입의 당위성을 계속해서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벌어지는 반생명 행위를 줄이기 위해 전문가들은 부모가 아이를 잘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정부와 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생명철학을 연구하는 가톨릭대 철학과 신승환(스테파노) 교수는 “생명의 가치 앞에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그 원인부터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면서 “벼랑으로 몰리는 사람들에 대해 사회는 물론 교회 또한 더욱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령 영아’ 사태 이후 여야는 지난달 국회 본회의에서 아기의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법안을 의결했다. 이와 함께 거론되고 있는 보호출산제는 산모의 신원을 보호면서도 자녀의 유기를 막을 수 있는 산모 익명 제도로, 산모의 병원 밖 출산, 낙태율 증가 등 출생통보제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제도다.
한편 보건복지부의 18일 전수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최근 감사원의 복지부 정기 감사를 통해 드러난 유령영아 2123명 가운데 249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14일 기준 소재가 불분명한 아동 1095명에 대한 수사를 의뢰받아 814건을 수사하고 있으며, 이 중 생존이 확인된 아동은 254명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