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의 구원자이신 천주여 이제 대동아건설을 목표로 하고 매진하는 우리나라에 강복하시며 우리나라에서 나신 성인성녀들은 우리 기구(祈求)를 전달하사 하여금 제1선에 나선 장병들에게는 무운(武運)이 날로날로 혁혁하게 하여 주시고 총후를 지키는 우리에게는 억조일심으로 각기 직역봉공에 전력을 다하게 하시고 일사보국(一死報國)하려는 결심과 용기를 우리에게 더욱 치성케 하여서 하루라도 속히 대동아 영원 평화를 확립하게 하시고 따라서 세계가 평화 중에 주의 성명을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천주경, 성모경 각 세 번)
‘대동아전쟁 기구’라는 제목의 너무 어색한 위의 기도문은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태평양전쟁을 겪어야 했던 우리 교회가 바쳤던 기도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한 기도’를 성당에서는 매일 미사 후에, 그리고 가정에서는 아침기도나 저녁기도 후에 바치라고 독려했는데 당시 발행되던 교회 언론을 보면, 신자들에게 전쟁 수행에 동참하라는 지침이 자주 내려진 것을 알 수 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주요 적성국은 미국과 영국이었다. 일제는 영미와의 전쟁을 정당화하면서 이들을 영미귀축(英米鬼畜)이라고 불렀었다. 영국과 미국을 귀신과 짐승으로 표현한 것이다. 귀축(鬼畜)은 원래는 불교 용어인 아귀축생(餓鬼畜生)의 약어이다. 일본에서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짓을 하는 인간을 귀신과 짐승에 빗대어 귀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식민지 교회의 한계가 있었지만, 불의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에게는 전쟁을 통해 ‘대동아의 평화’를 이룬다는 논리에 편승했던 역사가 있다.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힘을 통한 평화’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지만, 지나온 어두운 역사를 제대로 성찰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에게 평화의 길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7월 27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한 미사가 봉헌된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민족화해위원회가 공동 주관하는 미사에서 한국천주교회는 전쟁 당사국들이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기원할 것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한 기도가 아닌,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은총에 감사하면서 우리 민족의 화해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하자.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