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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가시덤불 속에서 숨이 막혀버리지 않기를(호원숙 비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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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새벽입니다. 홍차 티백에 우유를 넣어 보온병에 챙겨 갖고 산에 오릅니다. 숲은 깊고 어둡고 젖어 있고 그러면서도 무덥습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걷습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멀리 희끗희끗 핀 누리장나무를 바라봅니다. 검색하여 알아보았지만, 여름 숲에 연분홍이 도는 흰 꽃이 피는 나무입니다. 제가 늘 멍하니 앉아 쉬는 바위에서 차를 마시지만, 벌레가 달라붙어 오래 있지는 못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숲이 가깝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거저로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집 마당에는 도라지꽃이 별처럼 피어 있어요. 글라디올러스는 비에 쓰러지기도 하지만 실내에 꽂아놓으면 끝까지 피어줍니다. 제가 특히 좋아해서 군데군데 심어놓았지만 한 송이 한 송이 피어나는 것이 매년 보아도 신비스럽습니다. 목백일홍의 붉은빛과 나무수국의 시원한 흰빛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줍니다. 어느새 상사화가 불쑥 올라와 피었네요. 그 연분홍빛은 이름 때문일까요? 아름답지만 슬퍼 보입니다. 그 큰비 속에서도 염천에 꽃대가 올라와 주었네요.

지인이 오래전(1989년) 저의 어머니(고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작가)가 신문에 쓴 칼럼을 스크랩해놓은 걸 발견했다고 보내줍니다. 저는 그 글의 시작을 보고 놀랍니다. 삼십년 지난 일인데 학교 안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이 마치 요즘 일어난 일과 별다르지 않은 섬뜩함이 있어서요. 최근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풍요로워졌는데 가장 소중한 목숨을 저버릴 정도로 견디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콩나물교실에서도 선생님의 차렷 소리에 모두 정신을 차렸던 시절의 진정성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나이가 들면 마음의 평화가 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걱정에 가슴이 떨리고 저려옵니다. 아니야 그러면 안 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하며 고개를 저으며 내 몸 생각만 하고 이기적으로 살아야지 하면서도 뉴스와 신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내가 무관심하고 모른 척하면 세상이 더 잘못될까 봐 조바심을 합니다.

마당의 꽃을 보고 그저 눈 맞추며 미소 지으며 식물들과 대화를 나누며 살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식물이 주는 기쁨과 위로에 감사하지만 밤새 오는 빗소리에 비가 그치면 쏟아지는 무더위가 예전 같지 않아 지구의 낌새에도 불안함이 깃듭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저에게 기도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이 늙은이의 아픔을 알아줄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저의 기도는 간절해집니다.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오늘의 말씀을 보며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기를, 가시덤불 속에서 숨이 막혀버리지 않기를, 돌밭에 떨어져 말라버리지 않기를, 주님 말씀을 연거푸 되뇝니다.



호원숙 비아 / 작가 / 펴낸 책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그리운 곳이 생겼다」, 「나는 튤립이예요」, 「엄마 박완서의 부엌-정확하고도 완전한 사랑의 기억」, 「아치울의 리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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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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