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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수능 백일 즈음에 / 이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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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100일이라며, 수능 백일기도를 시작한다는 본당 주보의 안내와 함께 자모회 알림 문자를 받았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위한 기도만큼 큰 위로를 주는 것도 없고, 더군다나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의 사랑과 정성은 참으로 값진 것이겠지만,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십사 기도하다 보면 자칫 이기적인 기복신앙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듭니다. ‘복(福)’을 바라며 기도하는 것이야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이지만, 하느님께 청하는 그 복이 주로 성공, 재물, 건강 등 인간적인 욕심을 채우는 것으로 향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수능 백일기도 역시 힘들게 공부하는 수험생 자녀를 위해 기도로 동반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내 자녀가 좋은 결과를 얻기 바라는 욕심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그런 지향을 두고 기도하다 보면 수능 결과가 마치 기도의 정성에 대한 대가이거나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과 축복의 크기인 것처럼 가늠하고 비교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 어떤 본당에서는 수능 백일기도를 하지 않지만, 부모들은 그런 본당의 방침을 두고 청소년들에게 무관심하다고 섭섭해하기도 합니다. 본당에서 수능 백일기도를 하는 게 좋은지, 하지 않는 게 좋은지 함부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2년 전 저도 큰아이를 위해 본당 차원의 수능 백일기도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몇 가지 상념을 나누고 싶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위해 백일기도를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할수록, 이 기도의 지향이 맞는 것인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납니다. 오직 성적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강요하는 부모의 등쌀에 견디지 못한 청소년의 죽음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 영화가 나올 때보다 훨씬 더 경쟁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자녀에게, 좋은 대학을 바라며 부모가 드리는 기도는 아이에게 힘이 되는 기도일까 또 다른 부담을 주는 기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기도 지향을 수능 시험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바대로 아이의 삶을 이끌어주실 것이라 믿고 맡기는 의탁의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본당의 경우 대성전 입구에 백일기도 지향을 둔 수험생의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다른 신자들도 함께 기억하며 기도해주십사 하는 의도일거라 짐작하지만, 수능 시험을 보지 않거나 부모가 백일기도 신청을 하지 않아 이름이 빠진 또래 청소년들은 저 이름표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백일기도 중에는 부모가 기도해주지 못하는 수험생을 위한 기도도 있었고, 기도초를 봉헌하는 날에는 교리교사나 자모회원들이 대신 촛불을 밝혀주기도 했지만, 가정 상황에 따라 청소년들이 소외감을 느끼거나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한편, 내 자녀를 위해 교우들이 함께 기도해준 것이 감사하긴 했지만, 백일기도의 효험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아이들의 대입 결과를 캐묻고 비교하는 모습은 상당히 부담되었습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한 부모들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성당에서 더 열심히 활동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실망하거나 위축되어 신자들의 관심을 피해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백일기도를 시작할 때 우리 본당에 이렇게 수험생이 많았나 놀랐는데, 수능 이후 기존에 나오던 청소년과 부모들이 성당에서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아는 부모 세대가 된 지금, 자녀를 위한 기도가 부모로서 욕심을 담지 않도록 경계하게 됩니다. 특별한 기념일을 챙기듯 백일기도의 정성도 좋지만, 평소에도 늘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이고 싶습니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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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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