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성모 승천 대축일인 오늘은 한국교회와 가톨릭 신자들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절망의 시기, 성모 승천이 전해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덕분인데요.
윤재선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명동대성당에 내걸린 태극기가 눈에 들어 옵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광복절'에 맞는 성모 승천 대축일.
한국 천주교회와 가톨릭 신자들이 민족의 해방을 '성모님의 선물'로 여기는 이윱니다.
여기엔 한국교회의 각별한 성모 신심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앙 선조들은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 마리아에 대한 사랑과 공경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자들의 성모신심은 박해시대 순교의 이유가 됩니다.
박해 당시 작성된 「사학징의」를 보면, 많은 천주교 신자가 묵주와 성모 상본을 지닌 채 체포됐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체포된 신자들은 순교 직전에도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성모신심을 증거합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성모신심은 19세기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면서 더욱 퍼져 나갔습니다.
1838년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한국 교회의 수호자로 정해줄 것을 교황에게 청했습니다.
3년 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이를 승인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1898년 완공된 명동대성당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했습니다.
1984년 방한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명동대성당에서 한국교회와 우리 민족을 마리아께 봉헌하기도 했습니다.
8월 15일 광복절이 성모 승천 대축일과 겹치면서 우리 민족의 해방을 성모 마리아의 은총으로 여기는 신자들이 늘어난 데는 이런 성모 신심의 역사가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 승천에 대한 교리는 초대교회 때부터 신앙의 유산으로 전승되어 내려왔습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8월 15일에 지내게 된 건 5세기 초 예루살렘에서 기념한 '하느님의 어머니 축일'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후 성모 승천이 가톨릭교회의 믿을 교리로 공식 선포된 건 불과 73년 전의 일입니다.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재위 1939∼1958년)가 "마리아의 몸과 영혼이 하늘에 영광에 부름을 받았다"는 성모 승천 교의를 선포하면섭니다.
성모 승천 교리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참혹했던 절망의 시기에, 그리고 전쟁의 기운이 끊이지 않고 있는 오늘날 한반도와 전 세계에도 특별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습니다.
CPBC 윤재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