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출생해 올해 우리나이로 109세를 맞은 할머니가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쌍문동본당 박석란 할머니인데요.
박 할머니는 지난달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새내기 신자’입니다.
109세에 늦깎이로 영세하게 된 사연을 이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3.1운동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915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박석란 마리아 할머니.
토끼띠인 할머니는 우리 나이로 109세입니다.
증손자만 아홉 명이고, 증손자 가운데 맏이가 30대입니다.
할머니 가족은 명절 땐 적게 모이면 10여 명, 많을 땐 서른 명 넘게 모이는 대가족입니다.
할머니는 지난 7월 19일 세례를 받았습니다.
쌍문동본당에선 지난 6월 세례식을 거행했습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병자영성체 날에 집에서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귀가 어둡고 말수가 적어졌지만, 세례식 날은 동네 잔칫날이 따로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무늬 옷을 갖춰 입고 하느님 자녀로 거듭난 겁니다.
할머니는 비교적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지내왔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돕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선량한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태형순 실비아 / 넷째 딸>
“지나가던 사람들 정말 힘들었던 분들이 다 엄마가 들어오게 하셔가지고 그냥 보내신 적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꼭 씻게 하고 갈 때는 쌀도 드리고…”
할머니의 이웃사랑과 나눔 실천은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태복순 / 첫째 딸>
“작은오빠도 어머니 성품을 닮아서 그런지 (학창시절) 교복을 한 번 해주면 남아나는 게 없대요. 대여섯 번은 (교복을) 해줘야 된대요, 엄마 말씀에 의하면. 왜 그러나면 학교 가서 그 반에서 교복을 안 입은 사람이 있으면 오빠가 벗어주고 온대요. 엄마 나 우리 반에 누가 교복을 안 입고 왔으니까 나는 다시 해달라고 주고 왔다고.”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 등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에는 이웃을 위한 사랑과 나눔이 가득했습니다.
비록 자신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지만, 딸을 계성여고에 입학시키는가 하면, 신자가 된 딸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했습니다.
<태연순 크레센시아 / 둘째 딸>
“제가 참 부끄러운 얘기를 하게 되는데요. 저보고 ‘성당에는 아침기도 없나? 너는 왜 기도를 안 하노?’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고령인 박 할머니는 남들처럼 예비신자 교리 수업에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에겐 교리공부가 필요 없었을지 모릅니다.
주님은 100년 넘게 착하게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온 할머니에게 당신 자녀가 되는 은총을 선물로 주신 게 분명해보입니다.
<태연순 크레센시아 / 둘째 딸>
“다른 젊은 사람처럼 교리를 다 배우지는 못해도 평소 어머니께서 ‘천주존재’, (천주교의) 4대 교리 중에서 천주존재와 강생구속은 확실히 의식 속에 있으셨어요.”
할머니의 영세는 쌍문동본당의 기쁨이자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문세영 신부 / 서울 쌍문동본당 부주임>
“할머니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느즈막에 하느님을 아신 만큼 더욱더 특별한 느낌과 특별한 감정을 갖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고 항상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생활해주셨으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박석란 마리아 할머니의 세례 소감이 궁금했습니다.
<박석란 마리아 / 109세 영세한 새 신자>
“(엄마 세례받으셨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응 좋아요.”
하느님 앞에서 할머니는 이제 세례 받고 기뻐하는 어린 소녀처럼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CPBC 이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