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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한국 첫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 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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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눈부시게 온 몸을 감싼다. 빛의 예술인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이 신비롭고도 강한 손길로 유혹한다. 우리나라 첫 순교자와 성모칠고의 이야기를 56개의 유리창에 풀어내는 장대한 작업이다. 박상운 신부님이 7개 장으로 나눠 주제를 보내줬다. 명료하게 선별해 주는 신부님의 영명함 덕분에 작업 구상이 뚜렷해진다. 그 시대로 들어가 완벽한 자료들을 수집해야만 했다. 서울대교구 정웅모 신부님을 찾아뵙고 자료들을 모은다. 큰일을 앞둔 나에게 용기를 주시며 적극적으로 문을 활짝 열어주신다.

순교 당시의 의상과 집, 순교의 형장, 처형 때의 상황, 주교들의 말씀, 시복식 현장, 유해가 발견된 초남이 등 많은 자료들을 펼쳐놓고 처절했던 우리 선조의 수난의 현장 속으로 뛰어든다. 오랜 세월 동안 유교 정신에 젖어 지내던 분들께서 하늘의 참된 진리를 깨닫고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자생적인 신앙의 토대를 마련하신 분들이다.

구베아 주교님께서 그 당시 상황을 기록하신 글이다.

“1791년 12월 8일 순교 후 9일이 되던 때에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렀다. 마치 그날 살해된 것처럼 시신은 붉고 부드럽고 부패의 흔적이 없었다. 사형선고문 목판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신자들은 흘러내린 피를 손수건에 적셔서 죽을 병에 걸린 사람에게 손수건을 만지도록 했더니 깨끗이 치유됐다.”

가난하고 힘든 백성에게 허약한 믿음을 굳세게 하고 믿지 않는 이들을 신앙으로 이끌어 주는 이 기적의 치유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힘이 된다.

성당 창문의 설계가 4조각으로 세로로 길게 연결돼 있다. 작품 구상에서부터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창이다. 첫 순교자의 순교터에 세워진 전동성당. 조선에, 특히 호남에 말씀이 전해진 의미를 담았다. ‘LUCEM IN HANC TERRAM’(이 땅의 빛을)

두 번째 창에는 유항검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는 세 분의 순교자가 담겼다. 하늘 문이 열리고 한복에 의관을 차리신 세 분의 기쁨에 찬 세례식이다. 견진성사를 위해 북경까지 비밀리에 다녀오신 윤지충이 조선땅 곳곳을 전교하러 다닌 발걸음을 등불이 밝혀주고 있다.

북경 교구장인 구베아 주교의 제사금지령이 내리자 신주까지 불태운 세 번째 그림이다. 이로 인해 신해박해가 시작됐고 순교자들은 가시관의 고난길을 스스로 택했다.

네 번째 창은 순교자들의 수난이 꽃으로 피어나는 장면이다. 참수형에 처해지는 두 순교자를 그린 다섯 번째 창. 칼춤을 추는 망나니와 참수를 기다리는 순교자, 그리고 이어질 많은 순교자들의 결박된 절규의 손들 위로 십자가의 빛이 내린다. 여섯 번째 그림은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의 시복식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따르는 순교자의 피는 우리들 신앙의 씨앗이 됐다. 마지막 창에서는 2022년 3월 11일 초남이 바우배기 터에서 세 복자의 유해가 발견될 당시 사발지석에 쓰인 ‘속명지충(俗名持忠), 성명보록(聖名保祿)’의 문장이 윤지충의 묘임을 확인시켜 준다. 목 위로 지나간 칼의 흔적이 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묘지 위로 들림을 받으시는 고결한 영혼이 성모의 품에 안긴다.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죽음을 맞이하신 첫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윤기현 세 복자이시다. 몇 달에 걸친 작업이 끝났다. 온몸과 마음이 그분들의 삶 속에 요동쳤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이다. 아픔의 긴 터널을 겨우 지나온 이 시점에 순교자의 영혼을 기리는 작업을 하게 하신 주님의 계획이 오묘할 뿐이다.
정미연 아기예수의데레사(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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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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