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기억한다. 이들은 위대한 인물이라 해서 ‘위인’으로 불리며, 이들의 삶은 ‘위인전’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어린 시절 나는 위인들의 전기를 거의 섭렵했다. 대부분 이들의 삶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동을 선사했다. 비폭력의 저항을 통해 평화의 길을 가르친 마하트마 간디, 노예해방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선포한 아브라함 링컨, 감염성 질병의 치료법을 밝혀내 인류의 건강에 기여한 파스퇴르, 60여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 준 슈바이처 등과 같은 분들은 자신의 전생애를 통해 인류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기여한 분들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위인전을 읽으면서 왜 이분들이 위인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지는 경우도 꽤 많았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와 나폴레옹 그리고 징기스칸과 같은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이루어낸 황제나 제왕이었다. 이들은 수많은 사 람의 목숨을 희생시켜 자신의 영토와 권력에 대한 욕망을 채운 권력자였을 뿐이다. 나는 이들이 얼마나 훌륭한 인격을 지니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대로 전해지며 존경을 받거나 본받아야 할 인물로 기억되는 것이 과연 옳 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오늘날에도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에 등장한 이들의 수식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도서출판 세종에서 발간한 위인전에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수식어가 붙어있다.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세계의 왕 알렉산더,” “많은 나라를 정복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몽골제국을 세운 위대한 왕 징기스칸.”
만일 위인이란 개념을 폭넓게 정의하면 이들이 위인이란 점을 일부 수긍할 수 있다. 즉, “위인”이란 인격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고 그 삶을 귀감으로 삼아야 할 사람이란 의미보다는, 뛰어나고 위대한 사람 혹은 성공한 사람이란 의미로 보자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위인전은 본받아야 할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에서 이름을 떨치고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 마음속의 위인은 전쟁영웅이 아니 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어린 시절 나는 전쟁을 통해 자신의 야욕을 키워낸 인물들을 위인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본받고 싶은 사람은 바로 인류의 사랑과 평화에 기여한 사람이지 전쟁과 폭력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었다. 만일 전쟁을 일으켜 이름을 떨친 사람을 위인으로 본다면, 전쟁의 광기로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히틀러와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뚱 역시 위인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내 마음속의 위인은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긴 몇몇 사람이 아니라 작은 업적을 위대하게 남긴 수많은 사람들이다. 이 작은 업적이란 바로 사랑의 삶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삶을 뜻한다. 사랑의 삶과 생명을 살리는 삶은 드러나지 않게 세상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세상은 영웅적 성공담을 기억하지 작은 사랑의 실천을 기억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분들이 남긴 사랑과 생명의 삶은 오직 자신만 알고 유일하게 하느님께서만 기억해 주신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지만 세상에 빛을 던져주고 있는 이름 없는 위인, 그분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들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성인들이다. 이분들의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는 살만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결국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위대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작은 사랑을 위대하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마더 데레사의 이 말씀은 오늘날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작은 사랑을 위대하게 실천하고 있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리고 싶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