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 신(神) 제우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에게 반했다. 유부남이 유부녀에게 접근한다. 100 퇴짜가 예상되는 상황. 제우스는 질투가 심한 아내 헤라에게 들킬 염려를 고려해야 했다. 이때 제우스의 머리에 아이디어 하나가 번쩍하고 떠올랐다. 그것은 ‘변신술’이었다. 제우스는 백조로 변신, 레다를 유혹한다. 아이디어는 성공했다. 여차여차해서…, 레다는 임신을 했고 쌍둥이 형제가 태어났다. 쌍둥이는 훗날 헤라클레스와 함께 아르고 원정대의 일원으로 항해에 나서는 등 그리스 로마 신화 곳곳에서 맹활약한다. 이후 형제가 죽자 아버지 제우스는 이들의 영혼을 하늘에 올려 빛나는 별로 만들어 주었다. 겨울철 서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쌍둥이자리가 그것이다.
제우스의 아들 쌍둥이 카스토르(Castor)와 풀룩스(Pollux)를 만난 것은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인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였다. 신화의 영웅이 로마의 중심부에 당당하게 서서 로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캄피돌리오 광장 뒤편으로 기원전 6세기부터 하수도 시설이 있었다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 고대 로마의 중앙 광장)가 연결된다. 여기서 ‘포로’(Foro)는 영어 포럼(Forum, 토론회, 토론의 장)의 어원이기도 하다. 포로 로마노는 원로원과 신전, 상점 등이 모여 있던 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다. 신성한 길이란 뜻을 가진 비아 사크라가 가로지르고 있고, 이 길을 따라 웅변가들이 연설을 했던 로스트라는 연단을 비롯, 티투스 개선문 등 다양한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발품으로 유적지를 돌아보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이 유적들의 주인공들은 처음에 어떻게 이곳에 터전을 잡게 되었을까.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이야기의 맨 앞줄에 또 하나의 쌍둥이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트로이의 ‘아이네아스’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트로이가 멸망한 직후 아이네아스는 망명길에 오른다.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를 방황하다 마침내 도착한 곳이 현재 로마의 테베레 강가였다. 아이네아스는 당시 무주공산이었던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후손들이 살아갈 터전을 마련한다. 그 후손 중에 로마 건국 영웅이 태어난다. 레아 실비아라는 공주가 있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결혼할 수 없었다. 작은 아버지가 아버지의 왕권을 빼앗으면서 후손이 태어날 것을 두려워해 조카인 공주를 여사제로 만든 것이다. 그녀는 신의 여인이었다. 인간과 결혼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쟁의 신 마르스(Mars,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르스)가 산책 나갔다가, 우연히 레아 실비아를 보았다. 첫눈에 반했다. 신화에서 신이 여자에게 반하면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 있다. 아들이 태어난다. 레아 실비아는 쌍둥이 아들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를 낳는다. 그러나 이들의 생명은 이내 위험에 처한다. 자신의 왕권이 위협받을 것을 염려한 왕이 쌍둥이 조카를 강에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전쟁의 신 마르스의 아들이 아닌가. 강을 따라 흘러 내려간 쌍둥이 형제는 늑대의 젖을 먹고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는 사이좋게 지내던 형제가 성장한 후에는 경쟁관계로 바뀌었다. 결국 형인 로물루스가 동생을 죽이고 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이 로마의 기원이다. 기원전 753년 로마는 그렇게 탄생했다. 로마라는 명칭은 쌍둥이 형의 이름인 로물루스에서 유래하는데, 만약 동생이 나라를 세웠다면 ‘로마’가 아닌 ‘레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후 로물루스는 테베레 강 주변에 있는 7개의 언덕에 자리잡고 로마를 성장시켜 나갔다. 처음에는 작은 도시 국가에 불과했던 로마는 이후 차츰 세력을 넓혀 훗날 서북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그리스, 터키를 넘어 중동 지역까지, 남쪽으로는 아프리카까지 정복, 대제국으로 성장한다.
그 대제국의 면모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판테온(Pantheon)에서였다. 기원전 27년 건립된 후 125년 개축된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의 합성어다. 판테온은 로마의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다. 유럽 전체를 정복하다보니 각 민족이 모시던 신들을 수용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신전이 뒤에 가서는 가톨릭 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된다. 다신교 로마가 그리스도교 로마로 변화하는 과정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건축물이 판테온인 셈이다.
로마에서 판테온을 만들기 위한 망치 소리가 요란했던 시기, 제국의 변방 이스라엘 가나안 땅에서 인류의 영적 도약을 이루는 엄청난 일이 준비되고 있었다. 헤로데가 통치하던 마지막 20년 동안 유대인들은 비교적 평화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총명했던 청년 헤로데는 늙으면서 점차 변해갔다.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는 일이 잦았다. 결국 아내와 아들들까지 무참히 살해했다. 그러던 폭군 헤로데가 기원전 4년 따뜻한 봄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온천에서 사망했다. 강렬한 카리스마로 유대인들을 통치하던 헤로데가 죽었다. 로마와 유대인간 다툼과 반목, 갈등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혼돈의 시대에 한 유대인 아이가 나자렛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이 아이가 훗날 로마의 역사를 바꾼다.
어떤 이들은 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이스라엘로 가야 한다고 한다. 옳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로마는 직접 눈으로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교를 설명하는 글자책이라면, 로마는 그림책이다. 로마에 있는 수 백개의 성당들에 그려진 그림과 조각, 성물들은 2000년 전에 실존했던 나자렛 예수에 대한 증언 그 자체다.
그 로마 그림책의 첫 번째 페이지에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있다.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 살짝 발을 들였다. 그렇게 나는 화려한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웅장한 원주형 기둥(284개)과 사각 기둥(88개)들이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를 환영하는 듯, 두 팔을 벌리고 손 흔들고 있었다.
글 _ 편집부